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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들이 Nov 21. 2021

4. 허물을 벗는 중입니다

그래서 오름, 네 번째 이야기 

산에 오르는 글을 쓰기 위해, 요즘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 중이다.


하지만 9월과 10월에 백신 접종을 하느라 산에 거의 오르지 못했다. 산 아래에서 한없이 약한 몸과 마음을 가진 나는 백신 후유증을 잘 이겨내지 못했다. 특히 2차 접종 후에 여전히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아, 산 아래에서 산 위의 변화를 바라보기만 했다.


오르지 못하니, 마음에 이름 모를 불안들이 다시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게 가장 오래된 불안 중 하나인, 실수라는 이름의 '허물'이다. 나는 참 실수가 많은 사람이다. 뭐든 한 번에 해내는 법 없이 꼭 시행착오를 거친다. 그래서인지 일할 때도 늘 마음을 졸였다. 행여 실수해서 또다른 허물을 쓰게 될까봐, 작은 일에도 안달복달했다.


사실 산을 오를 때도, 과거의 크고 작은 자주 실수들이 떠올랐다. 아주 어린 시절에 잘못한 일부터 끝없이 밀고 올라오는 실수가, 결국 내 미래를 막을 거란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 생각을 지우려고 산으로 꾸역꾸역 올랐다. 그런데 하루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내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주자'라고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20대까지 나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 이 시기에 "그럴 수 있지" 또는 "다음에 잘하면 되지"란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실수 앞에 나는 늘 생각이 짧고, 모자라고, 철없는 아이로 치부되며 호되게 혼이 났다. 그래서인지 직장 상사가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실수 앞에서도, 역시 나는 모자라서 실수하는 거라며 스스로를 몰아 붙였다.


그런데 문득 산을 오르다, 내가 쓴 허물이 실수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한 번씩 실수를 할 때마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마음이 허물이 되었다. 별 일 아닌 일에 혼자 유난을 떠는 마음이 허물이 되었다. 작은 일도 큰 일로 만드는 호들갑이 허물이 되었다. 누구도 일깨워 주지 않는 이러한 생각들이 산 중턱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에 쌓인 진짜 허물을 하나씩 벗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허물없는 사람이 어딨어,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된 거지"


얼마 전 종영한 <원더우먼>이란 드라마에 나온 대사다. 스치듯 들은 이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그렇다.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 오늘 한 실수에 너무 오래 마음 쓰지 않기를. 오늘 실수를 바탕으로 다음 번엔 더 성숙한 내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또, 이런 사람이 되려면 역시 내게 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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