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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들이 Dec 07. 2021

5. 이를 '앙' 다문 여자

<그래서 오름> 다섯 번째 이야기

백신을 맞은 이후 귀가 계속 아팠다. 쉽게 가시지 않은 이통(耳痛)에 점점 차가워지는 날씨를 견디기 어려웠다. 추우면 추울수록 귀가 더 아팠다. 참다못해 이비인후과를 갔는데, 예상치 못한 진단을 받았다. 내 귀의 통증이 백신이 아닌 '턱관절이 삐뚤어진 탓'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내게 "평소 이를 앙! 다무는 습관이 있으신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는 평소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는 상황이 있을 때 이를 앙 다물다 못해 꽉 다물고 있는다. 소리 없이 이를 갈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산 아래에서 내 별명은 한때 '쌈닭'이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부당한 대우 등을 참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걸 본 동료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이를 앙!무는 대신 화가 나면, 그대로 화를 표출했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화를 낸다고 시스템이나 사람이 바뀌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내 사적인 영역에서도 그랬다. 때문에 삶의 안팎으로 화를 잘 냈던 나는 "왜 그렇게 감정적이냐"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이처럼 산 아래의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 표출에 박한 평가를 내린다. 화를 내는 일뿐만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참아야지." 결국 이 말에 지고만 나는 화를 내는 일도, 눈물을 흘리는 일도 참기 시작했다. 사실 겉으로만 표출하지 않았을 뿐, 속에선 화를 내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생긴 버릇 중에 하나가 바로 이를 앙 다무는 일이었다.

병원 진단을 받은 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산을 오를 때도 내가 이를 앙 다물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산에선 모든 감정이 무뎌져서 아닐지 모른다.

다만, 추워진 날씨를 따라간 마음이 무뎌질 기회를 찾지 못하고 또 이를 앙 물었던 것 같다. 유난히 겨울만 되면 몸도 마음도 힘들다. 지난여름 뜻하지 않게 등산이 힘이 된 것처럼, 겨울도 산은 내게 힘이 되어 줄까?

그러고 보니 산에 오르지 않은지 벌써 두 달쯤 됐다. 얼떨결에 턱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나는 맑은 겨울 하늘 아래 여전히 초록색인 산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를 앙! 다물 바엔 겨울 산이나 오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미뤄뒀던 겨울 트레이닝복 구입이 시급하다. 인터넷에서 1만 6천 원에 파는 걸 찜해 두었는데. 다시 이를 앙 물어서 턱관절 치료비에 돈을 쏟고 싶지 않다. 무섭고 아프게 쓰기보단, 내 행복을 위해 쓰고 싶다.

요즘 이렇게 생각이 두서없다. 아무튼지 간에 진짜 턱 돌아가지 않으려면, 산에 올라야겠다고 머릿속을 정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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