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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들이 Dec 12. 2021

6. 마음이 움츠린 아이

<그래서 오름> 여섯 번째 이야기

요즘 산에 가지 않지만, 한창 산에 오르면서 떠올린 생각을 기록해 본다.


하루는 등산 중에 초등학교 때 다닌 글짓기 수업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단지가 두 개뿐인 아파트에 살았다. 그 아파트에 사는 남편들의 직업은 모두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웃 간에 비밀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단체 과외 형태로 진행되는 글짓기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 장소는 역시 같은 아파트 주민인 선생님의 집이었다.


글짓기 선생님은 내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고 칭찬했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이 좋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나는 동네에서 '좀 모자란 아이' 축에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들 중에 나와 한 살 차이가 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언니는,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자매로 소문나 있었다. 같은 공부를 해도 자매의 반도 못 따라갔던 나는 쉽게 비교 대상이 되었다.


마음이 위축된 나는 글짓기 선생님의 칭찬을 절반만 믿었다. 칭찬이 좋아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서도, 정말 글을 잘 쓰기 보단 숙제를 제일 성실하게 해와서 듣는 말이겠거니 했다.


이러한 불신이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들었다. 수업에서 쓴 글을 글짓기 대회에 내지 않아, 동네가 약간 소란스러워진 것이다. 당시 선생님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글짓기 대회 참여를 제안했다. 그리고 원고지에 쓴, 완성된 원고를 학생들이 직접 우편으로 보내게 했다. 이 또한 필요한 경험이라고 설명하면서.


나는 선생님이 갈색 봉투에 고이 담아준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 '보내봤자'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어린 마음에 같은 대회에 나가서 홀로 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원고를 책상 서랍에 방치했다.


얼마 뒤, 공모전에 글을 낸 이들의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들뜬 마음에 선생님은 "이중 시원이 글이 제일 좋았으니깐, 시원이가 젤 큰 상을 받았을 거야. 무슨 소식 없었니?"라며 눈을 반짝였다. 순간 당황한 나는 상을 받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선생님은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모전 측에 알아보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결국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그 소식에 선생님도 엄마도 펄쩍 뛰었다. 왜 보내지 않았냐고 말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글을 모아 보낼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엄마도 그런 선생님을 원망했다.


선생님은 내가 큰 상을 받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 모습이 나는 제일 곤혹스러웠다. 또, 죄송한 마음에 '자신이 없어서 공모전에 안 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덜렁대고 모자란 아이라, 서랍에 넣어 놓고 깜빡 잊었다고만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 내 재능을 그토록 믿어준 경험을 그때 처음 해봤다. 뭘 해도 2%로 부족한 아이. 때문에 믿음과 칭찬도 늘 2% 부족하게 받았던 그 시절 내게, 선생님의 온전한 믿음은 생소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기회 앞에서 망설이고 놓쳤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보다, 나를 부족하다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탓이었다. 오랜 시간 원고를 보내지 않았던, 그 어린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긴 시간을 보냈다.


과거를 떠올리며 산을 오르다 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좋아하는 산 중턱에서 다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여전히 작다. 저 작은 세상보다 더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움츠렸던 아이. 35살이 되어서야 그 마음을 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건 꼭 해보려고 한다. 더는 무언가 시작도 하지 않고, 겁을 먹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고 자신은 없다. 그러나 그때 글짓기 선생님처럼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덕분에 조금씩 마음이 성장하는 중이다. 덕분에 가라앉지 않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젠 스스로 가라앉지 않게 위해 계속 오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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