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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들이 Feb 27. 2022

7. 산도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름> 일곱 번째 이야기 

최근 한파가 누그러진 틈을 타 거의 반 년 만에 산에 올랐다. 작년 가을부터 거의 산에 오르지 못했다. 특히 2차 백신 접종 이후 몸살을 크게 앓은 탓에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다. 또, 어김없이 찾아온 한파에 산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약해진 몸으로 겨울산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치 생기를 잃은듯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기온이 떨어질 때마다 온몸이 깨질 듯한 추위를 느끼며, 엄살을 부리고 유난을 떨었다. 그러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집콕을 선택했다. 1월엔 약속을 거의 잡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 회복에 힘썼다.


가끔은 집순이 생활이 답답하기도 했다.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마음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때문에 '언제쯤 다시 산에 오르고, 외출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 기온이 오른다는 소식이 들렸다. 여전히 추운 날이었지만, 용기 내어 막바지 겨울산에 올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마주한 겨울 산은 예상보다 더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날은 해가 별로 들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무엇보다 참 고요했다. 우거진 풀숲에서 들려오던 새소리와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직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까마귀 소리만 들려왔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조용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꼭 잠든 산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토록 차분한 분위기의 산이라니. 낯선 풍경에 '역시 겨울 산은 아닌 건가?'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큰맘 먹고 나왔으니, 금방 돌아가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천천히 찬 공기에 숨을 고르며 산을 올랐다.


조용한 산을 두리번거리며 오르는 데, 문득 '겨울은 산이 쉬어가는 시간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계절과 달리 빛바랜 모습이 겨울잠을 자는 것 같았다. 온전히 쉬기 위해 모든 활동을 멈춘 듯이 보였다.


그동안 산은 오를 때마다, 내 마음속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 주었다. 그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자신이 품어 가져가고, 나는 평온한 마음만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다. 봄에서 가을까지, 계절 따라 또렷한 색의 옷을 입고서 말이다.

푸르고 선명했던 계절 속에서 산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어야 했을까? 다 품어주고 풀어주기 위해서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일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런데 자신이 쉬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오를 수 있게 문을 열어 놓은 산이 대단해 보였다. 대신 다음 계절에 다시 짙고 푸른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쉴 때는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야지.


산이 쉬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겨울 첫 등산을 마쳤다. 다만, 햇빛이 쨍쨍한 날 다시 한번 겨울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오늘, 햇살을 맞으며 조용히 등산을 했다. 여전히 잘 쉬고 있는 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산의 쉼을 알고 나니 빛바랜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이번 겨울 부디 잘 쉬고, 봄부터는 다시 따스히 내 이야기를 품어주길. 또 한없이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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