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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들이 Apr 24. 2024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에 대하여

배우 이청아가 실행한 '중꺾그마'에 대한 이야기

'중꺾그마(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연말마다 함께 인생네컷을 찍는 친구들이 있다. 작년 연말에는 다가오는 2024년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미니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나는 온라인상에 떠도는 웃긴 건배사 몇 개를 제안했는데, 멤버 중 H언니가 '중꺾그마'를 제안했다.


'중꺾그마'는 지난해 <제44회 청룡영화제>에서 영화 '거미집'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전여빈이 수상 소감에서 한 말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하며 유행했던 '중꺽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가 변형된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H언니는 중꺽그마에 대해 "우리는 꺾일 수밖에 없으며, 꺾여도 그냥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모임 멤버들 모두 그 말에 공감하여, 현수막에 '중꺾그마'를 넣게 됐다. 2024년에도 나를 꺾는 일들 속에, 해야 할 일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한편으로 올해는 나를 꺾는 일들이 좀 줄어들길 바랐다. 그런데 얼마 전 드라마 <하이브> 홍보를 위해 여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배우 이청아의 이야기를 듣고, 중꺾그마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출처: 유튜브 채널 테오TEO/살롱드립 시즌 2



이러한 생각의 시작은 <살롱드립2>였다. 해당 프로그램에 이청아는 배우 이보영, 이무생과 함께 출연했다. 네 사람 사이에 여러 대화가 오가던 중,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이청아는 “<늑대의 유혹> 이후 못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으니깐, 꼭 한번은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만두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연기에 재미가 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던 이보영은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자존심이 상해 뭔가 확 긁혀 저서 눈물 한번 쏟고 나면, 이를 악 물게 되는 동력이 되곤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장도연은 “그래서 ‘성장한다.’라고 하나보다.”라고 답했다. 


인스타그램에 짧은 쇼츠 영상으로 떠돌던 이 대화를 보고 무척 인상 깊었다. 자존심이 긁혀봐야 성장한다니,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내가 그렇게 못 하나?”라고 충격을 받을 때,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지 않는가. 그때 포기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던 노력과 변화를 시작하게 되면 ‘중꺾그마’가 된다. 


영화 <늑대의 유혹> 개봉 이후 120만 안티(?)와 함께였던 이청아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혹평에 수없이 꺾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칭찬을 듣기 위해 노력해온 8-9년의 시간 덕에, 현재는 '우아함의 인간화'라는 호평을 듣는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아함의 인간화 이전에 중꺾그마의 인간화처럼 보였다. 

출처: 조현아의 목요일 밤/ 유튜브



더불어 중꺾그마는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이 부분은 이청하가 홀로 출연한 <조현아의 목요일 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진행자 조현아와 대화 중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오래된 배우니깐,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쟤가 계속 연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을 거다. 성적이 부진할 때도 있었으니깐. <셀러브리티>는 그런 내가 ‘요즘 열심히 하네‘라는 기류를 만들어준 작품이다.”


메타인지란,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판단이라고 한다. 즉 자기객관화라고 볼 수 있는데, 차분하고 냉철하게 자신의 위치를 분석한 그녀의 말은, 조현아도 감탄할 정도로 메타인지가 돋보였다. 또한 그녀는 “모자랄 수 있지만,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스스로를 ‘탑배우’아니라고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마케팅 수업에서 배운 것처럼 자신은 메인 시장이 아닌 틈새시장, 즉 주어진 자리에서 오래 버티기로 마음먹었다면서 말이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조현아의 목요일 밤>을 통해 확인해 보길 바란다. 어떠한 분야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대목이라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출처: 조현아의 목요일 밤/ 유튜브



그 말에 그녀의 유튜브 채널(채널명: MOCA 이청아)에서 본 '내 진짜 목소리 찾는 법' 쇼츠 영상이 떠올랐다. 목소리에 고민이 많던 그녀가, 클리닉에 방문해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되찾은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었다. 그만큼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그녀  진짜 자신의 모습 또는 자신과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고민했는지가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중꺾그마의 ‘그냥 하는 마음’은 정말로 그냥 하라는 말이 아닐지 모른다. 내 생각과 다른 현실을 인정하고, 버텨내는 마음과 방식을 찾으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비록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좀 더 '나'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을 품고 있다. 그래야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목표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 번의 성공에 들뜨지 않고, 그 자리에서 차분히 자신의 길을 나가가는 이청아 만의 '중꺾그마' 방식은 내게 큰 영감이 되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엔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이제서야 아주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은 한번 꺾이는 경험이 있어야 성장하는 것 같다. 슬프게도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어란 마음으로, 배우 전여빈의 중꺾그마 소감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거미집'을 나타내는 단어가 신조어 중 잘 어울리는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중꺾그마'라고,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마음이 있으면 실체가 없는 것이 실체가 있도록 엔진이 되어줄거라고. 누군가 자신의 길을 믿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면 믿어도 된다고 너무 응원해주고 싶어요."
- 배우 전여빈 수상소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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