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직장인이 된 이후,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로지 내 것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 속엔 못다 한 취미활동도 있고, 일적인 성장을 위해 공부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퇴사 후 시간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도 실행하지 못했다. 그토록 바라던 삶의 여백을 ‘재취업’과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채우기 바빴기 때문이다.
내 삶에 불안은 디폴트 값이다. 별 걸 다 불안해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느라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서른여덟이 된 지금에서야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깨달았다. 이제는 그럴 시간에 책을 더 읽자라는 마음에, 밀리의 서재를 뒤적거리던 중 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발견했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시작부터 마음이 일렁였다. 작년부터 '이제 곧 마흔인데 어떠한 삶을 꾸려 나가야할까?'에 대해서 막연하게 고민하던 내게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던져 준 느낌이 들어서였다. 시간을 배제하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다니,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함 속에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또 다른 문장처럼 나와 같은 직장인은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돈을 버는 사람이다. 그만큼 번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생기기에 당연한 일이지만, 일에 시간을 오래 내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모순되게도 열심히 살수록 흔들리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김신지 작가 역시 시간을 내어준 삶의 고단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퇴사를 통해 자신의 시간을 찾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글이 참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떠한 감정도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고, 덤덤하고 담담하게 지나간 느낌이 들어서였다. 마치 '시간은 흐른다(지나간다)'라는 불변의 법칙과 이 책이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김신지 작가가 찾은 행복은 가까이에 있었다. 살고 있는 집에서 누릴 수 있는 것, 좋은 것을 발견하면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의 만남 등이었는데 읽으면서 '삶의 여백은 이러한 것들로 채우는 거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아직 김신지 작가처럼 온전한 시간을 누릴 타이밍은 아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되지 말고 이러한 것들을 조금씩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작가가 자신의 부모에게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할 수만 있다면 농사 지으며 고생하시니 부모님에게, 더 나은 기회와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뭉클하기도 하고 참 따뜻했다. 특히 김신지 작가의 어머님이 어느 날 일기장에 쓰셨다는 '오뚜기처럼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맘'은 유독 마음에 남아서, 다이어리에 여러 번 반복해서 써놓기도 했다.
시간은 쌓이고 쌓여서 내가 만들어진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지난 시간들이 쌓인 나는, 현재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 그저 불안정하게 걸어온 시간들이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후회와 불안감을 줄이는 시간을 쌓아보자고 다짐했다.
흔들리는 삶 속에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모든 이야기가 좋아서, 이북리더기의 하이라이트(밑줄 기능)를 엄청 사용했다. 다 읽고 필사하는데, 옮겨 적어야 할 문장이 많아서 스스로 황당했다.(ㅋㅋㅋ)
주변에서 김신지 작가의 책을 많이 추천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종이책도 사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