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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들이 Jun 01. 2024

모든 삶에는 저마다의 계절이 지나간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한 느낌 + 선릉과 정릉]을 읽고 

얼마 전, 배우 구성환이 출연한 MBC <나 혼자 산다>546회를 재밌게 봤다. 먹는 것부터 운동, 반려견 꽃분이와 한강 산책까지, 자기만의 루틴으로 채운 그의 일상은 행복해 보였다. 구성환 역시 방송 말미에 "매일이 호사이자 낭만으로 가득하다."라며 "고민이 없어서 제일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고민이 없는 삶이라니. 깔깔 웃으면서 방송을 보다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돈 걱정, 일 걱정, 사람 걱정 없이 '오늘 하루 맛있는 거 뭘 해먹지?'란 생각만 하고 사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그러려면 몇 번의 사계절을 지나야 할까?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네이버 TV

방송 속, 반려견 꽃분이와 한강을 노니며 시간을 보내는 구성환의 모습은 봄날 그 자체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누구나 자신만의 계절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도, 혼자 살지 않아도 자기만의 고민이 있지 않은가. 희노애락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연의 변화와는 다른 마음의 계절 속에 오래 앓기도 한다. 지금은 싱그러운 초여름이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시린 겨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최근 읽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과 <선릉과 정릉>이 떠올랐다. 소설가와 시인이 쓴 삶과 계절 이야기가 무척 좋았던 터라 기록을 남겨본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창비)


백수린 작가의 단독주택 살이가 담겨 있는 에세이다. 서울이지만 서울스럽지 않은, 허름한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낡고 작은 단독주택에서, 백수린 작가는 부지런히 자신만의 사계절을 보낸다. 단독 주택에서의 삶은 아파트나 빌라에 사는 것과는 다르다. 모든 공간에 주인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단독 주택에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백수린 작가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단독 주택에서 날마다 달라지는 창밖의 풍경을 즐긴다. 동시에 날씨에 변화에 취약한 단독 주택에서의 사계절을 대비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먼저 그 동네에 정착한 주민들과 교류하기도 한다. 때로는 동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형태의 삶을 관찰하기도 한다. 

소설가인 백수린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단독 주택에서의 삶이 하나의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잔잔한 일본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분명 책 속에는 사계절이 다 담겨 있었던 것 같은데, 그의 글은 초겨울을 맞이하기 전 적당한 푸르름을 품고 있는 막바지 겨울과 같았다. (그런 점이 책 표지와 잘 어우러진다고 느끼기도 했다. )


위와 같이 생각한 건, 그의 반려견 봉봉이의 이야기 때문이다. 백수린 작가는 살고 있는 단독주택에서 봉봉이를 떠나보냈다. 봉봉이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여러 번 떠나보냈다. 그 슬픔을 떨쳐내기 위해, 동네를 걷고 또 걸으며 시린 겨울 같은 마음을 흘려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백수린 작가는 이 책에 담긴 글 속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면, 그건 온통 봉봉이가 가르쳐 준 것이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상실의 아픔을 지나 그의 계절은 봄이 아닌 가을로 흘러간 듯 보였다. 


"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중략)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중에서


이처럼 그가 단독주택에서 보낸 모든 계절에는 우여곡절과 희로애락, 생과 사가 모두 담겨 있었다. 위 문장처럼 나 역시 내가 선택한 나의 집에서, 겨울을 지나 가을로 흘러갈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과 함께 마음 따뜻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선릉과 전릉 - 전욱진의 2월(난다)


이 책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출판사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중 하나다. 올해 처음 선보인 시리즈로, 열두 명의 시인이 한 달에 한 권을 출간해 일 년을 채워가는 프로젝트다. 책 속에는 하루에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시, 동시, 일기 등이 담겨 있다. 


<선릉과 정릉>을 구매할 때 서점 사장님이 "3월의 책이 나왔는데, 2월 편을 사시네요?"라며 웃었다. 그 말에 나는 "이 책이 좋아서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매년 앓는 2월의 연장선상 같았던 3월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월에 읽었다 ㅋㅋㅋ 속 시끄러울 땐 일단 책 사고 보는 거다!) 


글쎄 살다보면 그럴 때 있잖아요. 뭐든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 <선릉과 정릉> 중에서 


눈 닿는 모든 풍경에 황량함이 느껴지는 2월의 겨울을 나는 싫어한다. 움츠리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추위가 유독 나를 괴롭히는 탓이다. 그런데 위 문장을 읽고, 내가 2월의 겨울을 싫어하는 진정한 이유를 찾았다. 이때가 되면 나는 모든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움츠린 몸만큼이나 내 마음도 어깨를 피지 못한 채, 그동안 버티고 견뎌온 것들에 대해 '더는 안 돼!'라며 아우성을 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삶이 아직 내게 무언가 마련해 놓았다고, 덥석 믿어버리는 것. 무턱대고 긍정하는 것. 되살아난 사람의 마음으로.(중략) 그러니 흘러가도록 정해져 있는 것들은 반드시 흘러 가기를. 나로부터 당신에게로, 당신으로부터 나에게로. -  <선릉과 정릉> 중에서 


 나는 인생이 즐기는 것이 아닌, '버텨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가?', 또는 '이런 일도 겪고 참고 넘어가야 하는 가?'란 울분이 터지기도 한다. 전욱진 시인은 그런 마음에 은은한 위로를 건넨다. 화이팅 넘치는 위로가 아닌, 차분함이 느껴지는 문체로 '세상에 아직 내 몫의 아름다움이 남겨져 있으니, 우리는 버티어 살아낼 만하다.'라고 말한다. 


읽으면서 '시인이 건네는 위로는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몇 번이나 감탄했다. 각 달마다 선정된 시인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전욱진 시인의 글과 2월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2월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의 글처럼 내 삶에 흘러가야 할 것들이 흘러가고, 내 몫의 아름다운 계절을 만나기를 기대해 보기로 했다. 이를 보지 못하고 시련의 계절만 떠안고 있기에는 내 삶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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