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인 인터뷰집 <무>를 읽고
타로나 신점, 사주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맹신하는 건 아닌데, 잘 보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주저 없이 친구를 따라나선다. 또,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샤머니즘 러버라고 대답을 하기에, 무속인 인터뷰집 <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책은 올해 15만 명이나 방문했다는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겨우 발견한 보물이다. 행사 당시 회사 사람들과 방문한 나는, 뭐라도 건져가고 싶은 마음에 홀로 두 시간가량을 빙빙 돌았다. 생명수와 같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말이다. 정처 없이 떠돌며 사람 비는 곳이 있으면 냉큼 비집고 들어갔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게 닷텍스트라는 출판 레이블의 부스였다.
닷텍스트는 샤머니즘 러버라면 좋아할 만한 소재의 책들을 출간한 곳이었다. 그중 <무>를 고른 이유는, 살짝 열어본 책의 내용에 마음 짠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서전을 통해서만 판매된다는 이야기에 혹해서 얼른 업어왔다. (실제 온라인이나 다른 서점을 통해 판매되는 책이 아니었다.)
책 속에는 무속인 6명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다. 프롤로그에 그들의 ‘한’과 ‘업’에 초점을 맞췄다고 하는데, 참으로 적절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한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며,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한 번 이 길에 들어서면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 하는 게 바로 무속인이지 않는가. 무엇보다 이 일을 ‘직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시선이 좋았다.
인터뷰에 참여한 6인의 무속인 역시 신내림을 받기까지의 과정과 이후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 그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무속인‘이란 직업에 대해 ‘타인의 불행을 품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곱지 않은 시선을 많이 받는 직업이라 무슨 헛소리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원하지 않아도 가족을 위해 신내림을 받고, 자신의 불행을 끌어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매일 마주하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터질듯한 불행을 끌어안고, 점을 보러 가는 이들의 한탄은 끝이 없다. 부끄럽지만 경험상 나도 그랬다. 좋은 점사가 나와도, 나쁜 점사가 나와도 만족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래의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힘들 땐 연락이 와도 편하면 연락이 안 와요.”
가족의 일로 찾아와 함께 울었던 손님이 발길을 끊었을 때, 섭섭함을 드러낸 무속인의 말이었다. 아마도 인터뷰에 참여한 그 무속인은 해당 손님을 안타까운 마음에 가족처럼 대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서운한 감정은 뒤로한 채, 어려운 사람을 감싸주고 보듬어 주는 무당이 되고 싶다며 말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sbs <신들린 연애> 속 박수무당과 퇴귀사인 두 사람의 대화가 떠올랐다.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된 과정에서 겪은 풍파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생 서럽다.”라고 쓸쓸하게 웃었다. 대화 중 박수무당이 “우리가 이렇게 되려면 인생의 서사가 절대 무난하게 안 와지잖아.”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 말에 퇴귀사가
“무속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 점사 보고해야 하는데, 우리가 한이 없으면 이상해.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게 됐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남은 생을 자신과 타인의 한을 끝없이 품고 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내 삶의 불행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인 것 같다. 무어라 말을 더 덧붙이기 어려운 분야이지만, 혼자 울면서 연남동 타로집을 떠돌았던 시기에 만난 타로 상담사의 말이 떠올랐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삶이 재미없어요. 타로에 사람도 싫고, 다 싫다고 생각한다고 나오네요. 그런데 좋은 운이 들어왔어요. 그러니깐 밝고 재밌게 살아요.”
웃는 얼굴로 진심을 담아 건넸던 그 말이 <무>와 겹쳐졌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직업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타인의 불행을 잘 들어주는 직업인으로써 무속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지 않을까? 책을 덮으며 이러한 생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