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사람을 키운다는 것

by 타입씨

요즈음, 남자아기를 키우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 60일이 채 되지 않았다.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동안 아기는 신생아에서 영아로 신분이 달라졌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일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치우는 일에 여념 없다. 말 그대로 여념이 없다.


아기를 키운다는 건 정말 인생을 다시 한번 제대로 마주하는 일인 듯하다. 효율적, 효과적 같은 얄팍한 수식어에서 벗어나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속하기 위한,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일들을 요령 없이 수행한다.


먹이기, 재우기, 치우기 기능만이 코딩된 로봇처럼 말이다.


어느덧 나의 먹는 것, 자는 것, 쉬는 것은 뒷전이 된다. 나의 것들은 어느 정도 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기의 것들은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아기를 키우는 부모의 시간은 알게 모르게 모양을 바꿔간다.


그간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나 지식이나 기지 같은 것들은 아무런 소용없는, 오직 부모의 체력과 시간만을 묵묵히 쏟아야 하나씩 넘어갈 수 있는, 먹이기 재우기 치우기의 무한한 순환과 함께.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삶에 정녕 아기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실감 나지 않았다. 매일 두세 시간씩 겨우 눈을 붙이고, 밥도 먹느니 마느니 하며, 화장실도 눈치껏 호다닥 다녀오면서도 그저 해야 할 일에 충실한 로봇처럼 살아왔다.


재밌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면서도 사람은 일과에 적응을 하고, 아기도 조금씩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지금껏 나의 감정과 생각이 냉동인간처럼 느릿느릿 흘러가는 동안에도, 아기는 꽤 자라 있었다. 벌써 키가 60cm가 넘었고 몸무게도 5.5kg가 다 되어 간다.


그리고 이제는 반사적인 배냇짓이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설레게 하는 진짜 미소를 데헷하며 날려준다. 그 미소에 상당히 많은 것들을, 나는 거뜬히 내어주며 아기를 삶에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눈도 예쁘고 속눈썹도 길쭉하고 두상도 동글동글한, 꽤 귀엽게 생긴 게 자꾸만 웃어주니, 정말 이 시간이 그 자체로서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육아선배들이 이 시기가 흘러가는 게 그렇게 아쉽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아직은 고개를 가누지도 못하지만, 제법 목에 힘을 주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제법 가상하기도 하다. 앞으로 몸을 뒤집고 바닥을 기고 자리에서도 일어서고, 언젠간 같이 캐치볼을 할 날도 오리라는 생각을 하니, 꽤 막연했던 생의 모양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살다 보면 여러모로 어려움도 있겠고 즐거움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예정된 설렘 포인트들이 깃발처럼 먼저 꽂혀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든든한 기분도 든다.


앞으로 몇 년은 육아로 힘든 나날들이 이어지겠지만, 그때마다 그 순간이기에 반짝일 수 있는, 나와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을 온전히 만끽하며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다. 좋은 것이든 쉽지 않은 것이든 말이다.


요즘 들어 괜스레, 길거리를 오가는 나와 상관없을 모든 이들이 참으로 짠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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