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대만은 한국의 전쟁이 아니다
1, 대만이 미국 전략의 중심이 되는 순간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은 한국이 지난 몇십 년 동안 받아온 세계 질서의 전제를 뒤집었다. 문서는 대만 방어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고, 미국은 이를 단독으로 수행하지 않으며, 동맹국이 비용과 역할을 나눠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 문장은 정책이 아니라 결별 선언이다.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 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고, 안보는 ‘공유된 가치’가 아니라 ‘분담된 비용’이 된다.
한국은 오랫동안 한미동맹을 ‘한반도 방어의 구조’로 이해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전략 속에서 한반도는 중심이 아니다. 대만이 중심이고, 한국과 일본은 그 전면에 배치되는 ‘전진 비용 지대’다. 동맹은 보호의 언어가 아니라 계산의 언어로 바뀐다.
역사는 이 순간을 정확히 알고 있다. 1939년 폴란드는 프랑스와 영국의 ‘즉각 개입’ 보증을 믿었지만, 독일이 침공하는 순간 두 동맹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약속은 있었지만, 계산이 바뀌자 약속은 종이가 되었다.
오늘 한국이 믿는 동맹의 언어도 값비싼 종이가 될 수 있다.
2. 미군 주둔이 더 이상 억지력이 아닌 이유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한국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만 전쟁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NSS는 ‘제1도련선’을 제시한다. 오키나와-대만-필리핀-말라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해상 봉쇄선. 이 선 안에 한국이 포함된다는 말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 간 충돌에서 한국이 ‘표적화’되는 위치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 시대의 미군 주둔은 안전이 아니다. 오히려 표적의 좌표다.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의 전진기지이며,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무력화해야 하는 전략 공간이다. 한국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아도, 전쟁은 한국이 존재하는 방식 때문에 주어진다.
역사는 이 패턴을 여러 번 보여줬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공격한 이유는 쿠웨이트가 약해서가 아니다. 거기에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맹이 평화를 보장한 것이 아니라, 표적이 되는 순간을 만들었다.
3. 전작권은 자존심이 아니라 전쟁을 거부할 권리다
한국은 지금 전작권을 미국에 넘긴 상태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자존심의 문제로 오해하지만,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주권이다. 전작권이 없다는 말은, 한국 군대가 한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을 실행하는 군대라는 뜻이며, 한국이 전쟁을 ‘거부할 권리’를 상실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아직도 이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만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한국의 항만과 영공은 미국의 작전공간이 된다. 한국은 스스로의 판단 없이 자동적으로 전쟁에 편입된다. 이 구조에서 한국은 국가가 아니라 전쟁의 공간이 된다.
역사가 이미 말한 바가 있다. 1975년 남베트남은 미국의 ‘함께 싸운다’는 약속을 믿었지만, 미국이 철수하자 남베트남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전작권을 갖지 못한 군대, 자력 전략이 없는 국가는 위기에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작권은 자존심이 아니라 실체다.
전작권은 전쟁을 시작할 권리가 아니라, 전쟁을 거부할 권리다.
4. 동맹의 시대는 끝났다
트럼프의 동맹관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동맹은 가치가 아니라 거래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이 GDP의 3.5%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 숫자는 정치적 상징이다. 미국이 방패를 제공하는 시대가 아니라, 방패 비용을 계산하는 시대가 왔다. 불균형 해소란 말은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동맹의 부담을 늘린다는 뜻이다.
과거 한미동맹이 품었던 ‘가치’의 감성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계약서뿐이다.
역사는 이런 변화를 ‘문명 붕괴의 징후’로 기록한다. 냉전 시대, 나토의 전략 문서에는 동독과 폴란드는 ‘방어 불가능한 희생지대’로 분류되어 있었다. 어떤 동맹은 지켜지고, 어떤 동맹은 희생된다. 동맹이라는 말은 균등한 보호가 아니라, 전략적 계급을 숨긴다.
5. 미군 철수는 공포가 아니라 분리 전략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군 철수’를 공포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미군 철수는 ‘고립’이 아니라 대만 전쟁으로부터 한국을 분리하는 전략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한, 한국은 대만 전쟁에 끌려간다. 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은 한국을 공격할 이유를 잃는다. 한국은 대만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 주변국이 된다.
안보 공백을 걱정하는 시선은 강하지만, 지금의 구조는 공백이 아니라 의존이다. 미국의 핵우산은 보증서일 뿐이며, 증권이 아니다. 미국이 서울을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위험에 노출시키겠는가? 트럼프 시대에 그 질문은 농담이 된다.
역사는 이미 문서 보증의 허상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가 보증한 ‘부다페스트 각서’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크림반도 침공은 하루 만에 끝났다. 보증은 종이였고, 종이는 전략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군 철수는 반미가 아니라 현실주의다. 한국이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이다.
6. 핵우산의 허상과 핵의 권리
미국이 떠난 자리에는 무거운 문제가 남는다. 핵 위협 앞에서 한국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핵우산이 실재하는 억지력이라면 한국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선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은 핵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핵을 선택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핵은 공격의 언어가 아니다. 억지의 언어며, 억지는 자주국방의 핵심이다.
한국이 핵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도발이 아니라 생존이고, 침략이 아니라 억지다.
미국의 핵우산이 실제로 행동이 아니라 선언일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보여줬다. 1956년 헝가리는 소련 탱크 앞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이 보낸 것은 군대가 아니라 라디오였다. “우리는 자유를 지지한다”는 방송은 울렸지만, 탱크는 멈추지 않았다. 강대국의 도덕은 가장 안전한 거리에서 말해지는 법이다. 이때 헝가리가 배운 것은 단 하나였다. 약속은 종이이고, 지지는 전파이며, 전쟁은 피다.
7. 한국은 누구를 위해 전쟁하는가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한국은 누구를 위해 전쟁하는가.
대만이 한국의 전쟁인가?
대만의 정치 지위가 변한다고 해서 한국의 국경이 흔들리는가?
한국은 왜 대만 분쟁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가?
왜 한국의 젊은 세대가 남의 전쟁에 끌려가야 하는가?
한국은 누구를 위해 전쟁해야 하는가.
그 답은 하나여야 한다.
한국은 오직 한국을 위해서만 전쟁한다.
그리고 그날, 한국은 비로소 자기 문명을 가진 나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