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입도와 동시에 생수를 사다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시시때때로 마시고, 밥 지을 때도,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도 사용하다 보니 그 양이 상당했다. 정수기를 사용할 땐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게 물이었으니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물을 소비하는지 몰랐는데, 직접 생수를 사다 나르다 보니 문자 그대로 '물을 물 쓰듯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주 집에도 정수기를 설치하면 좋겠지만, 연세로 계약한 집이었기에 1년 후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될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뭔가를 구입하거나 설치함으로써 짐을 늘리고 싶지 않다며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렇게 계속 생수를 사다 마시다 보니 이번엔 순식간에 쌓여가는 페트병 쓰레기가 골치다.
사실 아파트에 살았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곳이 아파트 단지 안에 보통 몇 군데씩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첫 집은 분류 배출 장소인 클린하우스와의 거리가 무척 멀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도 무려 2.3km나 떨어져 있었다. 입도 초기엔 자동차 트렁크에 온갖 쓰레기를 다 싣고 버리러 가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무척 컸지만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게 또 아무 때나 버릴 수 있다거나, 도시처럼 요일별로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한 번에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입도 직전에 살았던 도시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혹은 이틀 정도 정해진 요일에는 뭐든 갖다 버릴 수 있었는데, 제주는 요일별로 배출 품목이 명확히 분류돼 있었다.
육지에서는 보통 커다란 택배 박스에 플라스틱, 캔 등 다른 종류의 재활용 쓰레기를 담아둔 후 배출 장소에서 분류해 버리곤 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종이와 플라스틱을 각각 다른 날에 버릴 수 있다 보니 많은 양을 차지하는 플라스틱을 담을 만한 마땅한 무언가가 없다. 고민하다가 결국 박스에 그것들을 담아 들고나가게 되면, 비워낸 박스는 도로 차에 실은 후 종이를 버릴 수 있는 날에 다시 클린하우스를 찾아가서 버려야만 했다.
요일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재활용 센터'도 있긴 했지만, 클린하우스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적을뿐더러 위치도 훨씬 멀었기에 내겐 무용지물이었다.
재활용 쓰레기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음식물 쓰레기다. 주변에서 '음식물 처리기'를 많이 추천해 줬지만, 정수기와 같은 이유로 꽤 오랫동안 구매를 망설였다. 사실 그동안은 늘 남편이 해주던 일이라 음식물 쓰레기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나오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늘 음식은 부족한 것보다 차라리 남는 게 낫다며 많이 사고 많이 버렸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냉동식품, 액체화 되어가는 야채, 곰팡이 핀 식재료 등을 버릴 때도 별다른 죄책감 없이 싱크대 위에 올려두면 우렁각시 같은 남편이 알아서 척척 처리해 줬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직접 음식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차에 싣고 이동해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카드를 꽂고 무게를 측정하는 동안 그 앞에 서서 기다렸다가 다시 카드를 빼고 음식물이 잔뜩 묻은 비닐 쓰레기를 버리는 작업까지 혼자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한번은, 늘 차에 두고 다니는 음식물 처리 카드를 분실한 줄도 모르고 쓰레기를 들고 외출했다가 고스란히 집으로 되가져 온 적도 있다. 분실한 카드는 결국 찾지 못했다. 추측해 보건대 두 번째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던 날, 쓰레기통에 카드를 꽂아둔 채로 그냥 온 것 같다. 몇몇 타 지역처럼 음식물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면 그냥 통에 투척만 하면 되니 카드를 분실할 일도 없고, 버리는 작업도 그나마 좀 수월할 텐데. 일반 봉투에 담아서 버리려니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이 열릴 때마다 코가 너무 괴롭고 더러워진 비닐을 버리는 것 역시 고역이다.
그래도 언제까지 불평만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섬에 살기로 결정했으면 육지의 편리함은 잠시 넣어두는 수밖에. 엄청난 쓰레기를 동반하는 생수 대신, 괴산 시골집에서 5도 2촌 놀이를 할 때 썼던 브리타 정수기를 다시 사용하게 됐고,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식재료는 피하고 만든 음식은 웬만하면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우려고 노력했다. 사실 '남기면 아깝다'라며 남은 음식을 먹는 건 늘 남편 몫이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남긴 음식 비용보다 그걸로 찐 살 빼는데 돈이 더 들어'라며 말리곤 했다. 하지만 제주도민이 되고 나니 남편과는 '다른 이유'로 내가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제주에서의 두 번째 집은 필히 클린하우스가 가까운 곳으로 구하겠노라 수없이 다짐하게 된 계기다. 적어도 제주에서만큼은 역세권, 숲세권, 공세권 다 필요 없고 쓰세권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