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조명이 꺼진 뒤,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박혜원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구세군 냄비 앞에는 온정이 모입니다. 일 년 중 가장 화려하고 설레는 밤,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목회자로서 매년 맞이하는 성탄이지만, 올해는 유독 그 화려한 조명 뒤편의 어둠에 눈길이 머뭅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예쁜 성탄 카드 속 그림은 참으로 낭만적입니다. 평화로운 마구간, 인자한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빛나는 아기 예수. 하지만 이천 년 전, 그날 밤의 공기는 결코 따뜻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낭만이 거세된 자리에서 시작된 희망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만삭의 몸으로 낯선 여행길에 올라야 했던 마리아의 불안함은 어땠을까요.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위해 짐승의 밥그릇(구유)밖에 내어줄 수 없었던 가장 요셉의 참담함은 또 어땠을까요.

첫 번째 성탄은 낭만적인 축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박한 사투였고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 냄새나고 초라한 곳으로 창조주가 내려오셨다는 사실. 이것이 성탄의 역설이자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며 와인 잔을 부딪칠 때, 저는 그 소란함 뒤에 숨겨진 고요를 응시해 봅니다.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그 '자기 비움'의 사건을 말입니다.


기다림, 욕망을 덜어내는 시간

성탄(Christmas)은 그리스도(Christ)를 보내주심에 감사하는 예배(Mass)입니다. 이미 오신 예수를 기뻐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기다림'은 지루하고 없애야 할 것으로 취급받습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기다림은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을 잠시 내려놓는 것. 내 안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워야 비로소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그분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도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닫습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수동적인 멈춤이 아니라, 내 삶을 정갈하게 가꾸는 능동적인 행위임을요.


선한 일을 하는 백성으로 산다는 것

최근 우리 사회에 부는 '착한 소비', '선한 영향력'의 바람이 반갑습니다. 거창한 교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짐을 나눠지고 윤리적인 삶을 고민하는 태도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성탄의 정신을 살아낸다는 건 그리 복잡한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나만 잘 살기를 바라는 이기심을 조금 덜어내고, 그 빈자리에 이웃을 향한 배려를 채우는 것. 화려한 트리 밑에 놓인 선물보다, 누군가의 언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체온이 더 필요한 시대니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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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가장 낮은 곳으로

이제 곧 성탄 아침이 밝아옵니다. 올해는 화려한 조명에 눈이 멀어 정작 주인공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소란스러운 축제가 지나간 자리에, 깊은 평안과 따뜻한 사랑이 남기를 소망합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기에, 닿지 못할 곳이 없는 그 사랑이 당신의 삶에도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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