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오징어를 손질하며
어머니의 식칼
요리를 시작하게 된 건 첫째아이가 6개월이 되어갈 무렵, 이유식을 먹일 무렵이었다. 쌀미음부터 시작하고 소고기나 브로콜리 당근 등 야채를 그저 잘 익혀서 곱게 주면 됐었기에 사서 먹여야할 이유가 없었다. 아기용으로 나온 이유식용기와 도구, 냄비는 너무 귀여워 소꿉놀이 하는 기분이 들었다. 30개월인 지금까지도 집밥을 주로 해서 먹이는데, 입이 짧아 많이 먹지도 정량을 다 먹은 적도 잘 없지만 첫째 아이 덕분에 그때부터 나의 요리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내 인생에서 요리를 시작한 것은 사실 그 보다 더 전으로 올라간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2년동안의 신혼 기간동안 요리를 아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실평수 8평의 아담한 첫 집에서 부엌과 거실이 함께있는 작은 집에서도 종종 요리를 하곤했다.
결혼을 결심하고 신혼집을 알아보고
신혼 살림을 장만하고, 한창 큰 일로 바쁘던 시기의 어느날 어머니께서 집 앞 큰 백화점에 날 데리고가셨다. 6층인가 7층의 높은 곳에 주방코너가 있었고 고급스러워보이는 칼과 도마가 있는 곳에서 '어떤게 마음에 드니' 하며 한번 구경해보라고 하셨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본 기억이 거의 없기에 부엌생활에서 매우 기본이 되는 주방용품인 도마와 칼을 마트도 아니고 백화점에서 산 다는 것에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예쁘고 값비싼 도마와 칼을 구입하여 내게 건네주셨고, '원래 칼은 그냥 주면 안되는데 천원만 줘.' 라고 하셔서 그 당시 집에 천원이 없어 만원짜리를 건넸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건강한 밥을 해 먹이고 싶고, 좀 더 잘 먹는 메뉴는 없을까 고민하며 여러 요리책을 둘러보고 시도하고 뒷정리도 하며 내가 부엌에서 서 있는 시간은 점점 쌓여갔다.
때로 나의 관심사가 집밥 해먹이기 보다 바깥놀이 활동이거나 집안 정리이거나 할때는 배달이나 외식을 하기도했다. 그럴때면 건강하고 깨끗한 요리를 먹이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기름지거나 간이 센 음식을 주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참 불편했고 저녁에는 꼭 집에서 국이라도 끓여서 줘야지 다짐하곤 했다. 그래도 집밥의 중요성과 엄마 역할에서 밥을 잘 해 먹이는 것을 1번으로 삼은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기에 살림과 육아의 바쁜 틈에서도 부엌일을 게으름 없이 열심히 했다.
이제 첫 아이가 두 돌 반, 곧 둘째가 태어나는 시점인데 요즘들어 나의 요리가 좀 자리가 잡았다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유료로 결제한 챗gpt 의 레시피 덕이 큰데, 집에 있는 재료를 말하면 요리를 추천해주고 간단하고 쉽게 조리순서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만삭이 가까워지며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외출시간과 바깥밥이 줄어든 덕도 있다.
새벽에 화장실 이슈로 깼을 땐 '아침 뭐먹지?' 하며 새벽배달, 예약배달이 가능한 배달어플 속 장보기 메뉴를 클릭한다. 때론 우리집에 있는 재료에 새로운 재료를 더하기도 하고 때론 새로운 메뉴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추가해 주문하기도 한다. 6시부터 집 앞에 갖다주는 신선하고 양이 많지 않은 식재료는 나의 요리욕을 돋군다.
주로 4시 전후에 하는 아이의 문화센터 시간으로 인해 수업이 끝나고나서 배고파하기전에 얼른 집에와 저녁을 차려줘야지, 간식 섭취를 줄이고 배고플 때 얼른 밥을 줘야지 마음먹지만 종종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힘들어 과자나 간식을 주기도 한다. 밥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설거지 없이 늘 요리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정결한 주방도 아니고 만들 재료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늘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애쓴다.
오늘 아침엔 5시 좀 넘어 기상해서 어제 사둔 오징어로 버터양파 오징어볶음과 불려둔 미역과 떡으로 공주가 좋아하는 미역떡국을 끓이고 찜기에 물만두까지 쪘다. '밥먹자' 하고 깨우면 '뭐 다른건 없나' 하거나 '오늘 메뉴는 뭐야?' 하는 남편의 말이 상상이 된다. 다 먹고나서도 꼭 싱크대에 그릇과 수저를 담가놓는게 전부이고 한번을 알아서 설거지 한 적도 없다. '와서 숟가락을 놓거나 공주 손 씻는걸 돕거나 아기 의자를 올리거나 상을 닦거나 다 먹고 설거지 할 생각이나 했으면 좋을텐데 꼭 다른 일을 더 시킬 언행 뿐이네' 싶은 식사시간이 많다. '요리해놨으니까 알아서 차려먹어' 라고 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머니께서 사랑으로 주신 도마와 칼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도 맛있는 집밥을 먹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