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다' 속에 '감상한다'

<대구>

by 정세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서, 해미는 귤을 먹고 싶을 때마다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손에 귤이 없다는 걸 잊고 귤껍질을 까먹으면 된다. 해미보다 몇 수 위인 사람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We’re now starting the process of clearing out the Strait of Hormuz as a favor to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including China, Japan, South Korea, France, Germany, and many others. (우리는 중국, 일본, 남한, 프랑스, 독일 외 각국 등 전 세계의 국가를 위해 호르무즈 해협 정리 과정을 시작하고 있다)”라고 글을 올렸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중국, 일본, 한국, 프랑스, 독일 등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은 것 같다. 그는 본인의 직위도 잊은 것 같다. 자신에게 질문하는 기자를 향해 “Quiet. Quiet, piggy.”라고 말하고, 자신의 SNS에는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를 언급하며 “Praise be to Allah.”라고 글을 작성하여 올렸다.

어찌 보면 ‘잊는다’라는 것은 현대인의 생존 전략인 것 같다. 주 7일 일하는 지인에게 힘들지 않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생각 안 하면 괜찮아요.” 매일 출근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인생을 버틸 수 있단다.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이면 괜찮단다. 사람들은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잔다. 자투리 시간에는 도파민 충만한 영상을 보면서 자신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모두 그렇게 감정도, 좋은 순간도 잊는 것 같다.

간혹 수험생에게 ‘올해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해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로 나가기 전인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느끼지 말라고 말한다. 죽은 것처럼,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힘든 것 같아도 그렇게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감정을 덜 느낀 대가는 크다. 감정에 둔해졌더라도 인간의 형태를 한지라 권태와 고독은 뼈저리게 느껴진다. 대학교 가서 행복을 누려보겠다고?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던 학교에 입학하면 초반에는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험생 때 느낀 감정을 다시 갖게 될 것이다. 길버트 심리학 교수와 심리학자들이 목표를 이룬 사람들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전후 행복 수준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원하던 일을 성취하든, 못하든, 초기 몇 달은 급격히 기분이 좋거나 안 좋았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느끼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난 오히려, 사람이기에 감정을 충만하게 느끼며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여기서 ‘배움’은 책으로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상생활 언제 어디서든 느낄 수 있다. 순간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친구에게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배울 수 있다. 또한, 문학이나 영화를 보며 마음 아파하거나 분노와 허탈 등의 복합 감정을 느끼며 온전하게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풍경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푸른 언덕에 둘러싸인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고서는 번잡하지 않은 자연환경을 보며 고요하게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혹은 풍경을 넋 놓고 보는 것도 좋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8일에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두고 “대구의 가치를 두 배로 상승시킬 최적임자”라고 말하였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느낀 대구의 가치는 어떤 것일까. 소시민으로서 나는 문명과 자연환경의 적절한 조화가 내가 중시하는 대구의 가치이다. 나는 대구에 살았을 적, 자주 집의 창문 앞에 서서 작은 산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초록빛과 하늘의 하얀색과 진한 파란색의 조화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멧비둘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침밥을 먹었다. 나는 대구가 대도시화되길 바라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적절한 조화를 보여주는 풍경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 남는 대구의 모습이다. 이 모습을 유지하되 중소기업이 탄탄한 곳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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