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는?'
인명피해. 예컨대 교통사고가 나면 몇 명이 죽었는지부터 빠르게 판단한다.
3명, 애매하다. 직접 현장에 가기에는 너무 보통의 사고.
서울 한복판에서 근무하는 기자를 사고가 난 지방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최소 5명 이상은 죽어야 한다.
회사 당직을 서다보면, 큰 사고를 확인하기 위해 연합뉴스의 '사건/사고' 탭을 반복해서 체크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단신 기사라도 올라온다.
어디에 끼여 죽었거나, 실족해 떨어졌거나, 안타깝고 꾸준하게 목숨을 잃어간다.
모든 사건 사고를 포함하면 하루에 체감상 10명 정도는 죽는 것 같다. 그러나 10명이 한번에 죽지 않으면 보고 대상조차 못 된다.
인턴 기자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2021년 여름, 정식 기자가 된 것은 2022년 겨울.
그때부터 계엄이 터진 2024년 12월까지 쭉 사건사고를 다루는 경찰 출입 기자로 살면서
수천 건의 사건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목도했다.
빈소는 못해도 50곳 갔던 것 같고, 살인 현장과 큰 화재 현장만 20곳 정도 간 것 같다.
글의 양식, 개인정보 공개 범위 등을 고민하다 글을 입사한지 만 3년째에 처음으로 쓰게 됐다.
흔히 말하는 '메이저 신문' 출신 기자는 정말 많고 나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현장을 경험했거나,
대단하고 존경할만한 선배들이 많다는 점도 글을 쓰는 데에 상당히 주저하게 됐던 이유 중 하나.
그럼에도 펜을 잡게 해 준 두 가지 글이 있었다.
하나는 한강 작가의 책 '소년이 온다'
'이 사람 글 진짜 잘 쓴다'라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는데, 그것이 내가 글을 쓰게 만들 자극은 아니었다.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벽을 느끼고 꺾여버려서, '내가 아무리 고민해도 이런 표현들을 쓸 수 있을까? 작가를 전업으로 하지 않길 잘했다' 류의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작가 취재를 참 잘한다, 기자했어도 잘했겠다. 디테일한 묘사가 엄청나다' 라는 느낌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근본적으로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광주에서 일어난 죽음, 참상을 다룬 책이기에,
사건 사고를 어떻게 취재하고 기록하며 글로 풀어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감명과 추진력을 얻었다.
또 하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의 책 '호의에 관하여'
이미 공개돼있던 블로그의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낸 것인데, 사실 권한대행 재임 당시에 블로그 글들이 특정 성향을 표방한다며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이 책은 단지 문 대행의 리갈마인드, 법관으로서의 일상과 생각들이 담긴 평범한 기록일뿐인데, 나로서는 공인과 사인의 경계에서의 '있는 그대로의 기록'은 무엇일지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 사람의 삶 자체가 직업에 투신해있다면 어디까지가 개인의 글인 것일까' 이런 류의 고민을 많이 하도록 해줬다. 나도 나름 다른 직업들에 비해선 투신까진 아니여도 일상을 많이 갈아 넣은 직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손쳐도 '일개 기자'인 나 정도면 일정 수준까지는 주관적으로 글 써도 괜찮겠구나 라는 다소 합리화적인 안심을 갖게 해줬다.
기자들은 걱정이 많다. 안팎의 시선으로부터 평생 자유로울 수 없고 대개 조용한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조용한 삶을 원하지 않는 기자인건가?
사실 조용하고 싶으면 기자하면 안 된다. 기자들은 기본적으론 '관종'에 가깝다. 이왕 기사를 쓰고, 글을 쓰는거면 주목을 많이 받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내 자신이 '평화롭고 싶을 때'에는 조용했으면 할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시끄럽게 세상에 떠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평화'가 아닌 '전쟁'을 야기하고 싶은 영역은 무엇일까. 이것이 내가 글을 쓰려할 때 중점적으로 고민하던 부분일테다.
나는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에 대해 다루고 싶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면 좋을지에 대해 잠시라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그 계기에 대해선 후술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쓰고자 하는 것은 2023년 4월 11일 발생한 강릉 산불의 유일한 희생자에 관한 글이다.
그간 이미 사망한 이의 빈소에는 많이 찾아가 봤지만, 아직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던 이를, 아직 유족이 되기 전인 가족들과 함께 찾아 헤맸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계속 글들을 수정해가며 꾸준히 써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