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알고리즘의 제국 - 누가 우리의 생각을 훔치는가
제6장 생각은 혼자 오지 않는다
3절. 침묵 속의 교향곡: 생각의 건축술
‘생각의 고리’는 비단 수천 개의 얼룩진 유리판 속 희미한 별빛을 분석하여 우주의 거리를 재는 과학적 발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훨씬 더 내밀하고, 주관적이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영역, 즉 인간 정신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모든 위대한 예술 활동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과학이 세계에 대한 ‘설명’을 찾는 여정이라면, 예술은 세계 속에서의 우리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이 정당화의 건축술이 가장 장엄하고도 고통스러운 형태로 드러난 증거를 찾기 위해, 우리는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지저분하고 초라한 하숙집 방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한다.
방 안은 온통 구겨지고 찢어진 악보와 두꺼운 책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벽에는 군데군데 축축한 얼룩이 져 있다. 바닥에는 다리가 잘려 나간 거대한 브로드우드(Broadwood) 피아노가 흉터처럼 자리 잡고 있고, 그 위에는 끊어진 현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다. 탁자 한구석에는 나날히 귀가 멀어가는 이 방의 주인을 위해 놋쇠 보청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던 당대의 기발한 발명가 요한 네포무크 멜첼(Johann Nepomuk Mälzel)이 고안한 기이한 기계 장치, 메트로놈이 놓여 있으며, 피아노 덮개 위에는 방문객들과 필담을 나눈 ‘대화 수첩(Konversationshefte)’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사자 갈기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다. 그는 이미 유럽 전역에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뒤를 잇는 위대한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독한 음악가였다. 음악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청력을 거의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했던 귀족 여인들은 그의 불안정한 지위와 점점 심해지는 귀먹음 때문에 그의 곁을 떠나갔고, 그를 후원하던 귀족들은 변덕스러웠으며, 세상은 그의 너무나 새롭고 혁신적인 음악을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하고 때로는 조롱하기까지 했다. 1802년, 그의 나이 겨우 31세였을 때, 그는 빈 근교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깊은 절망 속에서 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즉 후대에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고 불리게 될 글에 이렇게 썼다.
“오, 너희들, 나를 적대적이고, 고집스럽고, 인간을 싫어하는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들아. 그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지난 6년간 나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의사에게서 의사로 헛되이 옮겨 다녔다… 나는 거의 완전히 고립되어, 극히 필요한 경우 외에는 사회에 거의 나갈 수가 없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끔찍한 불안에 사로잡힌다… 아, 어떻게 나의 감각 중 가장 고귀해야 할 것, 한때 내가 가장 완벽하게, 다른 누구도 갖지 못했던 완벽함으로 소유했던 바로 그 감각의 약함을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내 생명을 끝장낼 생각까지 했다. 나를 붙잡은 것은 오직 예술, 바로 그것뿐이었다. 아, 내가 내 안에 느끼는 모든 것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인간의 삶이 주어진 결함에 따라 정해진 실패 값을 출력하는 차가운 기계의 알고리즘이었다면, 그의 서사는 여기서 비극적으로 폐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통계와 확률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가장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바로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오히려 그는 가장 인간적인 의지로 운명의 멱살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캄캄한 심연 속에서, 필멸의 인간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환희의 메시지를, 시공간을 초월해 온 인류의 영혼을 하나로 묶고 진동시킬, 거룩한 생명의 찬가를 잉태하고야 말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그가 던진, 그의 남은 평생을 관통하며 그를 지탱하고 괴롭히고 마침내 불멸로 이끈 거대한 ‘감응 담긴 질문’이었다. “이 모든 개인적인 고통과 세상의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삶은 왜 여전히 아름답고 찬미할 가치가 있는가? 어떻게 우리는 민족과 계급, 종교와 이념의 모든 경계를 넘어, 저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이 형제처럼 서로를 껴안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가?”
이 거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에게는 이미 수많은 데이터, 즉 음악적 재료들이 그의 영혼 깊숙이 축적되어 있었다. 바로크 시대의 대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장엄하고 수학적인 푸가, 그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이 완성한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의 완벽한 형식미, 그리고 그가 평생토록 존경하고 질투했던 천재 모차르트의 천상의 멜로디와 인간 감정의 심연을 꿰뚫는 오페라. 그는 이전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들이 남긴 모든 귀중한 유산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자신의 몸으로 체화한, 살아있는 서양 음악사의 데이터베이스였다.
만약 그가 단순히 이 방대한 데이터를 영리하게 조합하고 변주하는 영혼 없는 계산 기계였다면, 그는 매우 아름답고 기술적으로 완벽하며 세련된 교향곡들을 무수히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교향곡 9번 ‘합창’이 될 수는 없었다.
그의 창작 과정은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계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혼돈과 투쟁, 그 자체였다. 후대에 남겨진 그의 스케치북들은 마치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기록된 전쟁터와 같다. 하나의 주제 선율, 단 몇 마디의 악구가 완성되기까지 수십, 수백 개의 다른 버전들이 격렬하게 태어났다가 가차 없이 지워지고, 긁히고, 덧칠해지기를 반복했다.
이것이 바로 그만의 처절하고도 숭고한 ‘감응 통과’의 과정이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 완전한 침묵 속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그 누구보다 더 깊이 소리의 본질, 음악의 구조, 그리고 인간 감정의 심연과 홀로 치열하게 씨름하고 있었다.
그는 영국의 악기 제작자 토마스 브로드우드(Thomas Broadwood)가 선물한 크고 튼튼한 피아노의 다리를 기어코 잘라내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느끼기 위해, 마룻바닥으로 전해지는 진동을 발바닥과 온몸의 뼈로 감각하려 한 것이다. 그는 입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거친 선율을 포효하듯 부르며 미친 사람처럼 방 안을 서성였고, 때로는 너무도 격렬하게 건반을 내리쳐 그 튼튼한 브로드우드 피아노의 현마저 툭툭 끊어져 엉망으로 엉키곤 했다. 사유(작곡)는 머릿속에서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0과 1의 연산이 아니라, 악기를 부수고 땀을 흘리며 손가락에서 피가 나는 물리적 마찰과 노동의 결과였다. 귀먹음은 그에게서 소리를 빼앗아갔지만, 역설적으로 소리의 가장 근원적인 육체성을 되돌려주었다.
또한 이 창조는 기계의 연산처럼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20대 시절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에 깊게 감명받은 이후, 그 벅찬 메시지를 완벽한 음악에 담아내겠다는 꿈을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숙성시키고, 버려졌다가, 다시 태어나기를 고통스럽게 반복해왔다. 이 지독한 시간의 무게 속에서 그는 멜첼의 메트로놈을 최초로,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작곡가였다. 귀가 먹어 실제 연주의 속도감을 느낄 수 없게 된 그에게 메트로놈은 단순한 박자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고동치는 추상적인 심장 박동을 시공간을 넘어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빌려온 '기계의 몸'이었다. 진정한 창조는 번개가 아니라 끈질긴 발효의 과정이며, 그는 기계의 차가운 규칙성을 기꺼이 이용해 인간의 가장 뜨거운 감응을 기록해 냈다.
더불어 그의 창작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의 고독한 독백이 아니었다. 피아노 위에 흩어진 수많은 ‘대화 수첩’들이 이를 증명한다. 철저히 고립된 천재조차도 우주의 진리를 닮은 교향곡을 작곡하는 와중에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어 동네 사람들과 필담을 나누고, 제자들과 치열하게 논쟁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가상의 청중과 대화했고, 이미 세상을 떠난 바흐와 모차르트에게 도전하며 새로운 길을 묻고 있었다. 이 낡은 수첩들은 사유가 결코 고독한 방 안에서 홀로 탄생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관계와 연대 속에서 빚어진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격렬하고 혼돈스러운 ‘생각의 고리’ 속에서, 그는 마침내 교향곡의 첫 1악장, 2악장, 3악장을 완성했다. 운명과의 장엄한 투쟁, 광란적인 춤곡, 그리고 천상의 평화로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전 시대의 어떤 교향곡도 도달하지 못했던 깊이와 규모를 가진 거대한 음악적 서사시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지막 4악장 앞에서, 자신이 평생에 걸쳐 답하고자 했던 그 거대한 질문—절망을 넘어선 궁극적인 환희와 인류애—을 어떻게 음악으로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는 순수한 기악(器樂)만으로는, 아무리 강력하고 아름다운 선율이라 할지라도, 그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 벅찬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고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이전의 모든 교향곡은 오직 오케스트라 악기들만으로 연주되었다. 그것이 바로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신성하고 불문율적인 법칙이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 이미 완성된 1, 2, 3악장을 모두 버리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바로 그때, 그 오랜 고뇌와 좌절의 가장 깊은 지점에서, 그의 머릿속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혁명적이고 대담한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오직 악기들만의 신성한 영토였던 이 교향곡이 마침내 인간의 입술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쇠와 나무로 만든 기계의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몸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악기가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와 다 함께 환희를 부르짖는다면?”
이것은 당시 음악계의 기준으로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터무니없고 불경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신성한 교향곡의 전통과 형식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오페라나 오라토리오가 아닌 순수 기악곡의 정점인 교향곡에 감히 성악을 도입하다니!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즉 그의 ‘감응’이 속삭이는 대답을 믿기로 했다. 그는 마침내 4악장의 격렬한 서주부가 끝나고 혼돈이 가라앉는 순간,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낮은 읊조림과 함께, 마치 한 명의 예언자처럼 바리톤 독창자의 목소리가 등장하여 이전의 모든 혼란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도록 결심한다.
“오, 친구들이여! 이런 소리가 아니네! 우리 모두 더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O Freunde, nicht diese Töne! Sondern laß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이것은 그의 음악이 이전의 모든 고통과 투쟁, 불협화음을 거부하고, 이제 새로운 차원의 압도적인 환희와 화합으로 나아가겠다는 작곡가의 위대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합창단 전체가 실러의 “환희의 송가”의 가사를, 마치 천상의 군대가 포효하듯 장엄하게 노래하기 시작한다.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불꽃이여… 그대의 마법은 갈라진 모든 것을 다시 묶어주노니…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Deine Zauber binden wieder…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 마침내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교향곡 9번 ‘합창’이 초연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극장은 빈의 모든 귀족과 음악 애호가들로 가득 찼다. 완전히 귀가 먹어버린 늙은 거장 베토벤은 오케스트라 옆에 서서 악보를 넘기며 열심히 지휘를 돕는 시늉을 했지만, 실제 지휘는 미하엘 움라우프가 맡고 있었다. 단원들은 이미 귀먹은 거장의 격렬한 손짓 대신 움라우프의 지휘봉만 바라보도록 지시받은 상태였다. 그 기나긴 연주가 마침내 끝나고 마지막 화음이 극장 전체를 뒤흔들었을 때, 베토벤은 여전히 악보에 코를 박고 머릿속으로 박자를 세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것도, 청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마치 폭풍우처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알토 독창자였던 젊은 가수 카롤리네 웅거가 감동을 참지 못하고 그의 옷소매를 부드럽게 잡아끌어, 그를 청중석 쪽으로 천천히 돌려세웠다. 바로 그 순간, 베토벤은 마침내 자신의 음악을 ‘보았다’. 귀로는 단 하나의 음표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는 손수건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수백 명의 관객들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의 가장 깊고 고독한 내면에서, 평생의 고통과 씨름하며 길어 올렸던 ‘감응’이, 이제 수백 명의 낯선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똑같은 ‘감응’으로, 경이로운 ‘공명(resonance)’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의 개인적이고 처절했던 ‘정당화’의 여정이, 마침내 시공간을 초월하여 공동체의 집단적인 깨달음(Judgment)으로 완성되는, 인류 음악사상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결코 고독한 천재의 머릿속에서 홀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흐와 모차르트, 하이든으로부터 물려받은 서양 음악사의 방대한 음악적 데이터
청력 상실이라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메트로놈이라는 기계의 심장을 빌리고, 다리 잘린 피아노의 진동을 느끼며 끊어진 현과 피땀으로 벼려낸 처절한 육체적 감응
대화 수첩을 통해 타인과 끊임없이 교감했던 끈질긴 사회적 연대와 협력
이 세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하나의 거대한 ‘생각의 고리’처럼 수십 년에 걸쳐 맞물려 돌아가며 마침내 창발한,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였다. 이것이야말로 ‘생각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진실의 가장 숭고하고도 강력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