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틈 에세이 #4. 선생님과의 상담, 숨기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
지난번 외래 이후 2주 동안은 꽤 무기력했고
다소 울적한 기분에 지배되어 있었다.
이번 외래에서 선생님께서 “어떻게 지냈어요?” 물으셨을 때,
나는 “그냥… 좀 멍한 순간들이 많았고 무기력했어요…” 라고 답했다.
나는 왜 무기력한지, 왜 멍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지 안다.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한 감정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난 스스로 이런 감정들을 외면하려 했다.
‘다 지난 일들이니 미련을 버리자’,
‘그 사람을 미워해봤자 내 감정만 낭비야’,
‘우울해 있지 말자, 잘 사는 모습 보여주자!’ 라며
나 자신을 다독이며 짜증, 분노, 억울함을 억지로 삭였다.
그저 “우울하다, 기운 없다”는 표현 외에는
나의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속이며
‘나는 많이 좋아졌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려 했던 것 같다.
다만 좀 울적할 뿐이라고.
선생님은 조심스레 2주 전 검사 결과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두다가 한순간에 충동적으로 나타낼 우려가 있다고 했다.
3개월 전 그날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한 거고,
숨기지 말고 그 또한 나의 감정이니 인정해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쏟아냈다.
“너무 분하다. 억울하다.
내가 당한 만큼 나도 그 사람들 등에 칼을 꽂고 싶다.”
맞다. 이게 지금 내가 느끼는 진짜 감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에게 좋지 않을 거라는 단순한 판단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진짜 나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러한 감정들까지 다 인정해주라 하셨다.
돌아보면, 내가 겪었던 일들에 당연히 따라오는 감정들이었다.
화가 날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으며, 울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이 들어 지금 화가 났구나.
그럴 수 있지.’ 라며 인정해주기로 했다.
이런 감정들 또한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현되는 일종의 면역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든다.
외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꽉 막힌 올림픽대로 위에서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속상함의 눈물이 컸지만,
어떻게 보면 나는 또 새롭게 깨달았고,
한층 더 성장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