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할 수 없는 이야기

by 은하수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행복한 기억들보다는 찝찝하고, 답답했던 순간들만 머릿속에 기억이 남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쳐 가는 찰나는 나에게 동아줄 같은 절박한 희망을 준다.


나에게 그 탕수육 집을 떠올리는 건 해 지는 노을을 떠올리는 느낌이었다. 눈앞에 놓여있던 노르스름한 타원형 접시 위 소복이 쌓여있던 노릇한 돼지고기 튀김들, 그 사이로 스며든 매끄러운 젤리 같은 소스를 보고 있노라면 나른한 기분이 들었고 그 순간엔 이 소스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줬으면 좋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도 했었다.


하교 후 천 원짜리 탕수육에 행복해하며 학교 앞에 즐비했던 떡볶이집을 친구들과 누볐던 그 시절, 중학교 교복에 익숙해진 지 겨우 1년이 넘어가던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총알같이 흘러간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나에겐 딴 세상 얘기였다. 그때 세월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에겐 무용일 뿐이었다.


학년이 바뀐다는 건 설명서 없이 복잡한 물건을 나 혼자 조립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탄했던 일상 속 처음으로 맞닥뜨린 어려움에 맞서기보다 다른 반으로 흩어진 친구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의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 번 매듭지어진 우정이란 건 영원하고, 이 관계는 절대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검증되지 않은 확신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3학년 말 무렵 고등학교 배정이 시작됐는데, 나 혼자만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받게 됐다. 인생이 온통 친구로 물들어 있던 열여섯 그 시절이 일순간 까맣게 블랙아웃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어렴풋이 담임선생님을 붙잡고, 친구들이 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어봤던 생각이 난다. 그 순간 선생님 뒤로 저물어가던 노을이 나의 마음을 빨갛게 타오르게 했고, 쓸쓸함으로 남은 상흔은 오랫동안 욱신거렸다.

낯선 기운들이 가득했던 고등학교 시절 나의 열일곱은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열아홉 끝무렵에는 빛바랜 그곳을 빠르게 벗어나기에 바빴다.


또 다른 출발선에 섰을 때 현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야 한단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어린 시절 따뜻함에 취해 그때의 온기만을 그리워했고, 그렇게 나는 과거의 상실감에 갇혀 버렸던 거다.


숨 쉴 공간 없는 방황의 공간에서 오랫동안 쓸쓸했고, 작은 생채기에도 쉽게 넘어졌던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이라도 손을 잡아주고 싶다.


혼자 시작하는 방법을 몰랐다면 나만의 속도대로 앞을 나아가면 되고, 넘어지고 깨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일 것이라고.


이 마음이 전해진다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은 덜 외로운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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