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by 은하수


- 본편을 읽기 전 1편 '반짝였던 그 시절에'를 먼저 읽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갔다. 하늘의 모양이 시시각각 변하며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갓 구운 식빵의 색을 띠고 있는 강아지는 몸뚱이를 확 낮추고 꼬리를 만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익숙하게 풍겨오는 냄새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고, 그녀는 오래전 잊고 있던 엄마의 품속에서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 오빠, 동생들이 정신없이 젖을 빨아대는 그 순간의 반가움도 잠시, 강아지는 낯선 사람의 손에 이끌려 동굴같이 어두운 차디찬 박스에 넣어졌고 그날 자기를 ‘몽실이’로 불러준 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작은 강아지와 소녀의 우정은 서로 만난 순간부터 피어나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남몰래 손에 한가득 들고 오던 언니와 그걸 맛나게 먹던 몽실이. 세상에서 애매하게 겉돌고 있던 두 존재는 마치 짝을 찾은 퍼즐처럼 붙는 순간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서로의 삶에서 가장 애틋하고 소중한 순간을 서툴게 맞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첫사랑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해 더욱 애달픈 순간이 찾아온다. 그날은 몽실이가 처음으로 품은 새끼들을 낳던 날이었다. 새끼를 낳는 시간이 유달리 오래 걸렸지만, 언니는 의례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곧 예쁜 강아지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부질없는 희망은 몽실이에게서 허망하게 새끼들을 앗아가고 말았다. 병원을 다녀와 집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내딛으며 힘없이 쓰러졌던 몽실이는 다음날까지 죽은 듯이 누워있기만 했고, 언니는 그런 몽실이의 옆을 다가가지도 못한 채 눈물만 지었다.


시간이 흘러 몽실이와 언니는 한 뼘 더 자랐지만, 언니의 마음이 내달리는 속도는 한참이나 더뎠다. 몽실이가 보이지 않으면 또 어디서 새끼라도 가진 채 돌아올까 봐 전전긍긍해했고, 신이 나게 놀다 들어오던 몽실이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목줄에 묶여야만 했다. 그런 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몽실이는 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고, 둘에게 칼날처럼 파고드는 상처들은 아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무심하게 난 생채기들이 굳은살이 되어가던 시간 동안 언니와 몽실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곁에 머물렀다. 언니가 놀자고 다가와도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마음껏 콧바람을 맡았던 몽실이, 예전처럼 살갑게 다가가기보다 몽실이만 보면 짓궂게 장난을 쳤던 언니. 둘에게 허락된 시간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꽃들에 무심할 정도로 세차게 비가 내리던 날 언니와 몽실이는 각자의 시간으로 되돌아갔다. 처음 찾아온 이별에 언니는 얼굴이 부르틀 정도로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울면서도 몽실이는 얼마나 무서울까, 몽실이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을까, 삽시간으로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여기 없는 몽실이는 언니의 질문들에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했고, 바깥엔 까맣게 물든 하늘만이 언니의 마음을 더욱 타들어 가게 했다.


코끝을 간질이던 바람에 곤히 잠을 자고 있던 몽실이는 눈을 떴다. 잠에서 깨면 언니도 없고, 살던 집도 보이지 않지만 늘 그렇듯 몽실이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비가 오던 날 언니도 보지 못하고 헤어지던 그때 못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끼를 낳고 몸이 아팠던 날 언니의 냄새를 맡고 푹 잘 수 있었다고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만큼 꽤 오래 기다린 거 같은데 언니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몸을 한번 털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몽실이는 몸을 잔뜩 낮췄고 멀리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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