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래 마을의 추억
그런 마을이 있었다.
얕은 산자락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집 앞엔 제법 넓은 내가 조용히 흘러 가는 곳.
주변엔 작은 논밭이 울퉁불퉁하게 펼쳐져 있으며 궁색한 세 칸짜리 초가집이 군데군데 자리해 있는 곳.
모두 순하고 착해서 낯선 이에게도 경계심을 품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
수하리는 그런 곳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면 과거 우리나라 어느 산골에 가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곳이다. 익숙하고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그런 곳.
최순집이 시집와서 첫 살림을 시작한 도암면 수하리의 모습이다.
수하라는 지명은 참 예쁘다. 물아래 마을이란 뜻이다.
높은 산자락에서 발원한 세 개의 물줄기가 이곳에서 하나로 모아져 넓은 내가 되어 마을 앞을 흘렀다.
집 앞에 흐르는 그 물을 따라 10리쯤 더 내려가면 더 넓고 깊은 천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곳 모래밭에 솥을 걸어놓고 천렵을 즐겼는데 그것은 모두가 기다리는 즐겁고 흥겨운 놀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의 어머니 옥선은 1935년의 겨울 어느 날에 태어났다.
춥고 매서운 눈바람이 불던 날, 보온이 안되어 찬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초가집의 작은 방에서 그의 어머니는 네 번째 아이를 낳았다.
그의 탄생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다.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가는 일들이 지금보다는 흔하게 일어났고 특히나 딸의 탄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앞마당 돌배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익어가는 것처럼 단조롭고 느릿하게 시간이 흘렀다.
옥선은 농삿일과 집안일을 거들면서 변화가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가족도 동무들도 다 그렇게 살았고 다른 삶의 형태는 아예 몰랐기에 다른 꿈을 꾸어본 적도 없다.
생각해 보면 1930년대 강원도 산골에서 사는 그들의 삶이란 더 오래된 옛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명이 서서히 세상을 바꾸고 있는 시절이었지만 그것은 산골의 삶과는 아예 상관이 없었다.
산골의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고 거슬러 올라가서 백 년 전 이백 년 전과 만나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작은 초가집에서 한복을 입고 살면서 과거의 방식대로 살았으며 태어난 고장에서 평생을 살았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농사꾼이 되어 노동을 일상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분수대로 살아갔다.
사내아이들 중 일부는 마을의 서당에서 천자문 정도를 익혔고 여자 아이들에겐 그마저의 기회도 없었다.
육이오 전쟁도 이 마을을 비껴갔다고 한다.
일테면 옥선이 기억하는 전쟁이란 어느 날 지나가던 인민군이 집에 들러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해서 물을 건네주었더니 그것을 마시고 가던 길을 간 것이 전부이다.
옥선은 집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가끔 동무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수를 놓으며 함께 잔 것이 전부였다.
옥선이 기억하는 가장 먼 외출은 열여덟 살 어느 봄날에 있었다.
옥선은 무릎 아래 종아리까지만 내려오는 신식 치마저고리가 입고 싶었다. 열여덟 살의 옥선에겐 그 옷이 세상에서 제일 이뻐 보였다. 그리고 신식 고무신도 신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옥선은 몇 날 며칠을 깊은 산을 헤매며 산나물을 뜯었고 그것을 둘러매고 강릉으로 향했다.
수하에서 강릉까진 칠십 리 길.
걸어서였다.
길을 아는 작은 올케와 마을 동무와 함께 아침에 출발하여 험한 대관령 길을 지나 강릉에 도착했을 땐 한낮이었다. 강릉 장바닥에서 그들은 몇 시간을 쭈그리고 앉아 그 나물을 다 팔고 그 돈으로 옷감을 사고 고무신을 샀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기엔 늦은 시간이었고, 다행히도 먼 친척집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돌아왔다.
제 손으로 돈을 벌어 옷감을 사서 손수 바느질을 하여 만든 신식 치마저고리는 꽤나 예뻤나 보다.
어느 날 그 신식 치마저고리를 입고 마을 나들이를 하는 모습이 우열(나의 아버지)의 눈에 들어왔다.
그때 옥선은 열여덟 살이었고 배꽃처럼 고왔다.
옥선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던 시절이었다.
현재도 수하리는 있으나 예전의 수하리는 없다.
여전히 오대산 자락으로부터 흘러오는 물이 그 마을을 지나가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다.
그곳은 이제 스키장과 골프장과 댐과 음식점과 누군가의 세컨드하우스가 가득 들어찬 곳이 되었다.
몇 백 년 동안 변화가 없던 마을이 몇십 년 동안 천지개벽을 한 셈이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그 근방에서 사신다.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모두 삼십 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고향은 지척에 있지만 고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향만 잃은 것이 아니고 고향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도 이제는 거의 다 떠나갔다.
나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는 1995년에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우리가 다 함께 살던 그 집에서 30년째 혼자 살고 계신다.
모두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누구에게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마음이 놓이는 그 고달픈 습관을 여전히 유지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