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가 건너야 하는,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운 다리
* 시라트 영화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주의 부탁드립니다 *
시라트는 전쟁 중인 사막을 배경으로,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와 레이브 파티를 향해 이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걷게 되는 이야기다. 여정의 중반부, 아들과 강아지가 예고 없이 발생한 사고로 어이없이 죽으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후 사람들은 레이브 파티를 향해 차를 몰다가 멈추는데,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춤을 추던 이들 중 일부가 갑작스럽게 폭사한다.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지뢰가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의 끝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난민들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싣고 또 다른 이동을 시작한다.
시라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어떤 상태 안에 떨어뜨리고 체험시킨다. 혹자는 서브스턴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비교하지만 이 영화에는 충격만이 있을 뿐 기승전결도 없다. 실종된 딸을 찾는다는 최초의 의도는 어느새 맥거핀처럼 스러지고, 오직 생존만이 목표가 된다. 올리베르 라셰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함께 의례를 통과한 자, 당신의 영혼에 통증이 남기를 바란다.
시라트는 이슬람에서 최후의 날, 모든 인간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다. 지옥 위에 놓인,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운 다리.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감독은 이 상징을 가져왔으나 구원은 지운다. 신은 침묵하고 천국은 제시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그 위를 걷는 사람들뿐이다.
이 영화의 죽음이 충격적인 이유는 부조리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절대 죽지 않는 존재인 어린이와 강아지가 아무런 복선 없이 죽어버린다. 그들의 죽음은 서사를 만들지도, 인물을 각성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일어났을 뿐이다.
나는 그 장면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인생 역시 순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는 기승전결이 없고, 죽음은 언제나 어이없다. 통계까지 갈 것 없이, 죽음은 재난보다 일상에서 더 빈번하다. 침대 위, 욕조 안 같은 사소한 공간에서 생이 끝날 수 있다. 이 영화의 잔혹함은 현실을 가감없이 복사해 왔다는 사실에서 온다.
시라트는 기존 영화 문법을 의도적으로 파괴한다. 설명도 정리도 않고, 관객을 안심시키지 않는다. 대신 걸을 뿐이다. 우리는 이유를 모른 채 이동하고 또 이동한다. 알베르 카뮈가 정의한 부조리의 세계, 인간의 의미 추구와 무의미한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이 장면마다 느껴진다. 시라트는 그 충돌을 '체험'시킨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완전한 절망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레이브 파티 장면에 있다. 전쟁 중인 사막에서 사람들은 음악에 취해 춤을 춘다. 이동진 평론가의 표현대로, 몸부림에 가까운 춤이다. 세상은 전쟁 중이고 사람들은 죽어가지만 몸은 여전히 생에 반응한다. 살아 있다는 것을 신체로 느끼는 행위. 만약 이 장면이 없었다면 시라트는 반쪽짜리의 편향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모두가 시라트를 걷는다. 동시에 각자의 레이브 파티를 향해 이동한다.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는 이동과,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끼는 몸부림. 소중한 이들이 죽은 뒤 남은 사람들이 한데 엉켜 잠드는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남겨진 사람들 사이의 애틋한 연대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며 나 역시 어떤 다리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죽음 또한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시라트에서 죽음은 아무런 존엄도 허락하지 않는다. 개와 어린이 같은 약자에게도 죽음은 찾아오고, 춤추던 사람들은 갑자기 폭사한다. 죽음의 거대함 앞에서 연약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끝날 뿐이다.
이 무작위성이 폭력처럼 느껴졌다. 태어남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음만큼은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안락사의 부작용을 모르지 않지만, 웰빙보다 웰다잉—최소한 마지막만큼은 스스로 정하고 싶어졌다. 존엄을 지키며 떠날 권리에 대한 갈망이었다.
시라트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다리 위에 세워둔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 다리 위에 있다. 부디 우리 모두가 함께 춤추고 연대할 수 있기를, 그래서 걸음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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