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그렇지만 행복하게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
-히포크라테스
"일주일 애사비 먹은 후기 쓴다."
애사비가 뭐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슨 신조어인가 싶었다. 검색해 보니 애플 사이다 비니거, 그러니까 사과 식초였다. 사과 식초가 줄임말로 불릴 만큼 핫한 키워드가 된 것이다.
Z세대를 넘어 알파 세대는 술 대신 제로 음료를, 야식 대신 단백질 바를 선택한다고 한다. 운동은 의무가 아니라 취미다. 건강식은 고통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흐름이 반갑다.
사구체신염 말기 진단을 받고 나서, 내 삶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줄을 서서 기다려 먹던 소금빵, 한 달에 한 번은 꼭 먹던 로제 떡볶이. 저염식 신장 식단을 받아 든 날, 앞으로의 식사가 형벌처럼 느껴졌다.
술 못 하는 걸 영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얼마 전 홍대에서 회식을 했다. 8명이 모여 콩불과 돼지고기 부위별 세트를 시켰다. 시원한 맥주 혹은 칼칼한 소주가 생각날 만한 메뉴였다.
"술이랑 음료 중에 뭐 드실래요?"
내가 물었을 때, 술을 선택한 사람은 단 2명이었다. 나머지 6명은 자연스럽게 음료를 주문했다. 멋대로 술을 시켰다면 분위기가 어땠을까 싶어 한숨을 돌렸다.
동시에 묘하게 재미있었다.
사구체신염으로 술을 끊은 시기와 헬시플레저 문화가 딱 맞아떨어지면서, 나는 어느새 트렌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 이제는 시대정신이 된 것이다.
병오년, 1월이 되니 헬스장 사람들이 확 늘었다. 물론 2월이면 반으로 줄고, 3월이면 또 그 반으로 준다는 걸 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9 to 6 근무를 마치고 힘든 몸을 끌고 온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나쁘지 않다.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함께 뛴다. 그들의 목표는 다이어트고, 내 목표는 투석을 견딜 체력이지만, 러닝머신 위에서는 모두가 같은 속도이다.
집에 돌아오면 코스트코 냉동채소 세트(정말 강력 추천한다)에 후추를 잔뜩 뿌린다. 두부, 계란, 참치와 함께 먹으면 귀찮은 사람에게도 괜찮은 한 끼가 된다.
가끔은 초콜릿 두부푸딩이나 고구마 빵 레시피를 검색해서 만들기도 한다. 수없이 실패했던 다이어트 덕분에 쌓인 식단 지식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나는 헬시플레저를 실천하는 트렌디한 사람이 됐다.
물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아니라 마실 수 없고, 운동을 즐기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한다. 저염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먹어야 하니까 먹는다.
하지만 친구가 잔뜩 생긴 기분이다!
앞으로도 이 트렌드가 계속되길 바란다. 그래서 디카페인을 주문하고, 제로 콜라를 마시고, 샐러드를 찍어 먹는 친구들이 더 많아지기를. 어쩌면 이게 내가 이 시대에게 받은 작은 위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