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특히 그 대상이 '내 자식'일 때, 그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나 역시 매일 다짐하고, 또 매일 무너지는 평범한 아빠일 뿐이다.
오늘의 기록은 흐트러진 내 마음을 먼저 추스르기 위한 글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매일 해야 할 일을 정해두고 실천하는 것.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이 일을 우리 아이들은 매일 해내고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
할머니가 오셔서 외식을 해야 하거나, 환절기 감기로 아이가 앓아눕거나, 갑자기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가 그렇다.
머리로는 '하루쯤 어때'라고 생각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오늘 못 한 비문학 독해 두 장은 언제 풀지?', '재능 학습지는 내일로 미루면 두 배가 될 텐데.'
걱정들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현장에는 항상 답이 있다. 수많은 사례를 지켜본 나. 그래서 알고 있다.
그 하루의 공백이 아이를 망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냐.. 답을 알아도 내 아이라 마음을 비우기 힘들다.)
100미터 앞서 출발한다고 정상에 먼저 닿을까
입시는 흔히 마라톤에 비유되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에베레스트로 비유를 한다.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수능이라는 고지조차 아직 10년이나 남은 까마득한 산봉우리다.
부모들은 내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에서 출발하길 원한다.
그래서 선행 학습을 시키고, 루틴을 꽉 채워 100m라도 앞서 나가게 하려 한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 중요한 건 출발선상의 위치가 아니다.
100m 앞에서 출발했다고 해서 체력이 약한 사람이 정상까지 갈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페이스를 모르고 초반에 무리하다가 주저앉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
중요한 건 컨디션 조절 능력과 위기 대처 능력이다.
공부하다가 아플 수도 있고, 슬럼프가 올 수도 있다. 이때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다시 신발 끈을 묶을 줄 아는 아이가 결국엔 끝까지 간다.
하루 공부를 쉬었다고 불안해하는 건, 10년짜리 등반을 하면서 물 한 모금 마시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것과 같다.
구멍 난 루틴을 대하는 태도가 진짜 실력이다
일 잘하는 선배나 후배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무작정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일의 맥락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이해하려 든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엉덩이 싸움이 아니라, '공부'라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가끔은 아이가 루틴을 못 지키게 된 상황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몸도 안 좋은데 공부 못 해서 어떡하지?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이때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가 "오늘은 그냥 쉴래요"라고 말하더라도 쿨하게 인정해 준다. 겉으로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일지 몰라도, 아이는 그 순간 스스로 저울질을 해봤을 것이다. '지금 쉬면 내일 힘들 텐데', '그래도 오늘은 너무 힘드니까 쉬고 내일 더 열심히 해야지'와 같은 생각들 말이다.
이 과정이 쌓여 아이의 '그릇'이 된다.
초등학교 시절은 공부라는 물을 채우기보다, 그 물을 담을 그릇을 넓고 단단하게 만드는 시기다.
루틴을 지키려는 노력, 그리고 지키지 못했을 때 그 구멍을 어떻게 메울지 고민하는 과정. 그 모든 것이 아이의 그릇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에필로그
부모인 우리는 아이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동안 날씨를 바꿔줄 수도, 대신 걸어줄 수도 없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지쳤을 때 잠시 쉴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주는 일뿐이다.
오늘 하루, 아이의 루틴이 깨졌다면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자. 그 빈틈 사이로 아이의 마음이, 그리고 그릇이 조금 더 자라나고 있을 테니까.
글을 쓰는 지금, 우리 첫째와 둘째가 곧 오늘의 루틴을 마치고 잠을 잘 시간이다.
'다 했어?'라는 말 보단, '대단해. 사랑해'라는 말을 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