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이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방식
아빠가 죽은 이유에는
여러 원인이 겹쳐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분명한 변곡점 하나는
보이스피싱이었다.
아빠는 원래 우울한 사람이었다.
결정을 앞두면 늘 망설였고,
잘해놓고도 스스로를 깎아내리곤 했다.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
평생 어려웠던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퇴직을 앞두고
상가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가까운 이야기를 꺼냈던 때였다.
그 돈을
전화 한 통으로 잃었다.
딸이 보증을 선 돈이었다.
그 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아빠가 스스로를 다시 믿어보려 했던
마지막 시도였다고 생각든다.
그때의 막막함은
지금도 선뜻 떠올리고 싶지 않다.
2023년 8월 29일.
보이스피싱 피의자 최종 변론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창밖을 때리는 빗소리가 너무 커서
아빠가 하늘에서 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피해자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나는 방청석에 앉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이야기를 들었다.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남은 건 분노뿐이었다.
저렇게 젊은 여자가
열두 명의 인생을 가로챘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의자의 변론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선고일만 남겨둔 채
법정을 나섰다.
그리고 인천대교를 건너온 김에
아빠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대신 계속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불편한 공기가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괜찮아질 거예요”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만 나눴다.
그 침묵과 거리감이
오히려 고마웠다.
식사를 마치고
아빠가 돌아가신 장소로 갔다.
아빠 차도, 아빠와 함께 걷던 길도
그대로였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아빠만 없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나는 오래 울었다.
우산을 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주저앉아
다시는 울지 않을 사람처럼 울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비를 퍼붓더니
자리를 떠나 인천대교를 건너는 순간
비가 멎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만 말이 많아진다.
그게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