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며 살아야지, 그 말이 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친하고 소중한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아픔을 100%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슬픈 이야기나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는 나름대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위로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극도의 상황에 도달해보니 알게 되었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위로한다고 하면서
실은 상처를 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혹시 내가 잘못될까 봐
중간중간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 있었다
“요즘은 어때?”
“더한 일은 없지?”
“그래도 아이들 보면서 살아야지.”
“너 혼자 아니잖아.”
그 말들은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빠짐없이 따라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힘을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존재가
즉시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지만,
엄마의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네 살과 돌 무렵의 아이들이었다.
슬픔만으로도 버거운 상태에서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듣는 순간,
마음이 툭 하고 내려앉게 만들었다.
자살유가족이 되어보니 알겠다.
내 마음을 다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말도, 표정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 해도
그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장 살아낼 힘이 생기지는 않았다.
이전까지 아이들은
분명 내 삶의 이유였다.
“아이들 때문에 산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일 이후,
그 믿음은 조용히 무너졌다.
내가 이토록 무너져 있는데
누구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 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순간에는 그 어떤 이유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