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계절의 경계
그렇다면 자살유가족에게
정말 힘이 되는 말이 있을까.
예전에도, 지금도 유효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시기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기억을 지우고 싶은 건지,
충격 때문인 건지,
아니면 서서히 멀어져 가는 하나의 시기인 건지
나조차 잘 모르겠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내가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버텼는지도 흐릿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딱 한 사람만은 남아 있다.
아빠가 떠난 뒤,
나를 가장 많이 생각해 주었다고 느껴졌던 사람.
가족도, 오래된 친구도 아닌
그저 같은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해결해주려 하지 않았고
조언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들었고,
다음 날 “괜찮아?”라고 묻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잠시 나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주었다.
돌이켜보니
그 침묵이, 그 거리감이
내게는 가장 큰 위로였다.
어린 자녀가 둘 있었기에
상실의 아픔을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삶이 너무 벅찼다.
숨만 쉬어도 힘들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을 정도로.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면
멀리 가지도 못한 채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와 대화는 하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유독 슬픈 날에만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심각하고 슬픈 이야기를
며칠, 몇 주씩 들어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가족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슬픔이 반복되면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니까.
그때는 몰랐다.
그 침묵이 얼마나 큰 배려였는지,
그 거리 두기가 얼마나 깊은 위로였는지.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 시절,
내가 받은 가장 고마운 위로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말도,
확실한 답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해도 괜찮다고
말없이 허락해 주었던 한 사람.
자주 연락하지 못했어도,
곁에 있지 못했어도
마음만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