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죽음에 대해 말하다가,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 써두었던 블로그 글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한 시기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자살’이라는 키워드로 유입되는 수가
평소보다 열 배 가까이 늘어났던 때였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명절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검색량이 높아지면서
댓글과 메시지가 함께 쏟아졌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누군가에게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던 사람들.
이미 십 년 전에 엄마를 떠나보낸 사람도 있었고,
곧 죽음을 시도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남긴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한동안
댓글 하나하나에 답을 달고,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모르는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들어주는 일은 많이 힘들었다.
혹시 내가 말을 잘못 건네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쩌나,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이라는 이유로
경찰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을지
며칠씩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내야 했다.
특히 전화나 메시지로
긴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이 있을 때는
불안이 더 길어졌다.
남편은 굳이 모르는 사람들과
그렇게까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냐며
답답해했다.
나 역시
다음 날 그 사람들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마음을 겨우 붙잡고 있는 하루를
내가 먼저 흔들어버릴까 봐.
그럼에도
아이들을 재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는
밀린 답변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며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글을 썼다.
그게 옳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버텨냈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들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
그 시간을 지나며
내 안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생겼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우리는 사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왜 이런 감정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나는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죽음에 대해 가장 많이 말하던 그 시기가,
오히려 내가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
출발점이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