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자식들

슈퍼우먼이 필요해진 순간 5

by 정아린


아이는 며칠 뒤 심하게 열이 났다.

설사를 멈추지 않았고 몸에 큰 염증이 생겼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뱃속에 있어야 할 시간에, 아이는 다시 병원에 들어갔다.


J는 병원비가 없어 다시 본가에 갔다가 거절당했다.

병원비는 친정에서 감당했다.

아이는 가장 좋은 병실에 머물 수 있었다.


수술을 기다리며 병실의 침대에 아이를 눕혔다.

침대와 병실이 휑하게 커 보였다.


나는 아이를 안고 휠체어에 앉아 수술실 앞까지 갔다.

간호사에게 아이를 건네자, 아이는 갑자기 크게 울었다.

수술실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날 것 같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슴 깊이 박혔다.


병원에는 친정어머니만 왔다.

J의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형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는 괜찮아?.... 어머니가 그러셨어. 벌 받았다고.”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주어는 없었다.

늘 그렇게 아무렇게나 던져진 말들을 덮어쓰고 있었다.


아기는 며칠 뒤 무사히 퇴원했다.

나는 곧바로 다시 일을 나가야 했다.


J의 외할머니가 아이를 보러 잠깐 들렀다.

아이를 품에 안은 그녀는 딸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어미가 여유가 많은데 왜 젖먹이 아기랑 엄마를 떨어뜨려 놓고 일을 시키나.”


J의 어머니는 뾰로통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혀를 차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쩌다 저렇게 인색한 지. 귀한 손주한테.”


그 방문 이후 J의 어머니는 한 달에 삼십만 원씩 생활비를 주기 시작했다.


그 돈이 J에게 어떤 무게가 되었는지,

그는 한겨울에도 수술한 아이와 나를 데리고 매주 본가에 갔다.

그는 달라진 것이 없었고 나는 더 바빠졌다.


J의 어머니는 틈만 나면 난장판 이야기를 꺼냈다.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등을 따갑게 때리며 말했다.


“시어미를 욕했냐?”


그녀는 며느리 사이에 오간 말이 무엇인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질문만 되풀이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영양식


매주 본가에 가던 어느 날,

J의 어머니는 내게 J의 형이 다시 공부해야하니 도우라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가다듬으며 말했다.

형수는 본가의 살림을 맡았고, 나는 수험생의 영양식을 챙겨야 했다.

J의 어머니는 그것이 가족이 힘들 때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J의 형은 본가에서 만나도 나와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는 늘 소파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리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말했다.


“형수는 쓰레기를 두 번 버리고 왔는데 왜 너는 한 번도 안 버리고 오지?”


나는 방 안에 눕혀있는 아이를 수시로 돌보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공평함 속에서

그들과는 다르게 내가 독립적으로 살려고 애썼던 시간들은 언제나 지워졌다.


그리고 J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넌 쉬운 공부 해서 참 좋겠다 내 공부는 정말 어려웠어.”


J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부모는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들이 가만히 있을 때마다,

내 안에는 동정심과 어떤 사명감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자라면서 친정 언니에게 느꼈던 어떤 것과 비슷했지만 따라오는 것들은 매우 달랐다.


집에 돌아와 나는 J에게 말했다.


“그렇게 치면 국문과 나온 어머니는 공부도 안 한 거고

미대 나온 나는 취미생활이네. 왜들 가만히 있지?”


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내가 예민한가를 생각했다.


특별한 면책권을 가진 J의 형은

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가능했다.


“얘는 낳을 때 떨어뜨렸나? 머리가 왜 이렇게 납작해?”


아이가 걷기 시작하며 본가의 액자에 손을 뻗자 일찍부터 버릇을 일찍 들여야 한다며

귀를 잡아끌어 결국 울리기도 했다.

나는 얼굴이 벌겋도록 서럽게 우는 아이를 안아 주었다.

J는 얼굴이 굳었고, 다들 웃기만 했다.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는 법도 몰랐다.


주말이 되면 J의 어머니의 당부대로 수험생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지만

메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김밥을 대충 말아 봉투에 몇 줄 던져 넣었다.

그게 시아주버님의 도시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