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하이웨이 285에서 만난 풍경
누구나 마음속의 풍경은 있다.
나는 유년시절을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산으로 바다로 뛰어다니며 자란 탓인지 유난히 산과 잔잔한 들꽃들이 잔뜩 핀 따뜻한 봄날의 바람부는 들판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것이 내 마음속의 풍경이 되었다. 언제나 힘들 때면 버릇처럼 나는 늘 내 마음의 풍경속으로 들어가 그 곳에서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조금은 오래 전에 콜로라도 주, 로키 마운틴의 어느 고산지대에서 내 마음의 풍경을 찾았다. 그곳은 콜로라도 하이웨이 285번을 타고 콜로라도 주의 남쪽에서 북쪽의 아스펜으로 가는 중 어떤 계획 없이 잠시 들렸던 곳, Independence Pass 라고 하는 해발 12000피트가 넘는 툰드라 지대였다.
굉장히 더웠던 한여름 7월임에도 그 곳은 50(F)도가 채 안되는 추웠던 고산지대로 여전히 드문드문 쌓여 있는 눈덩이가 간간히 보였다. 꼬불꼬불한 산길 운전에 지쳐서 잠시 쉴 겸 들렀었는데…언제나 말하지만, 난 운이 좋다. 그 곳에서 꿈에서만 가끔 볼 수 있던 내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고 걷게 될 줄이야……
온도를 확인하고 옷을 챙겨 입은 후 내려서 작은 산책로 입구로 들어갈 때 까지는 전혀 기대가 없었다. 표지판에 써 있는 해발 12000피트가 넘는다는 숫자가 그저 신기했고, 진정한 콜로라도 주의 산길을 경험한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그 곳은 참 독특한 곳이였다. 넓게 트여 있는 초록의 풍경으로 내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당연하지. 고산지대에는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보이는 산들도 늘 보던 크고 표족한 높은 산이 아니라 둥글둥글 귀엽다. 그리고 얼룩덜룩 하얀 눈이 작은 구릉 위에 쌓여있다. 그런데 역시나 그곳도 여름이라 작은 들꽃이 아기자기하게 하나 가득 초록 벌판에 옹기종이 피어 있다. 그리고 드문드문 하지만 곳곳에, 아마도 눈이 녹아서 만들어진 작은 연못이겠지. Tarn 이라고 하는 예쁜 연못이 거울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가만히 아름답고 특별한 이곳의 조용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가슴이 저려오고, 언젠가 꼭 와본 것만 같은 느낌, 혹은 잊고 있었던 그리운 광경을 다시 바라보는 것만 같은 그런 감격과 먹먹함이 함께 느껴져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가만히 서서 바람도 맞아보고 눈을 감고 빛을 느껴 보기도 하고, 크게 숨을 내 쉬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곳이 내가 늘 그리는 내 마음의 풍경과 같은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마음의 풍경에서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뛰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곳의 바람을 가르며 내 긴 머리를 마구 휘날리며 뛰었다. 역시 그 느낌이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풍경속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는 아니지만, 그 곳에서 나는 여전히 어린 소녀인 것 같았다. 정말로 내 즐거웠던 어린시절이 떠 오르고, 또 그 아름다운 날들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어른으로 돌아와 다시는 이 곳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현실적인 생각에 슬퍼지기도 했다.
그 곳에 다녀 온 후 향수병 같은 것에 시달렸다. 현실에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직접 경험해서 그랬던 것 같다. 꼭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듯이 말이다. 물론 충분히 다시 가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한번 만 방문하는 곳은 없지만, 하지만 이곳은 조금은 다르다. 다시 갈 수 있지만, 첫 방문 때 만났던 그 햇살과 바람과 냄새를 느끼지 못해 실망 할까 봐 다시 방문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 울컥하고도 감동적인 내 마음의 풍경을 그냥 내 마음안에 숨겨둘 생각이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힘들 때 다시 그 곳에 들어가 바람을 가르며 뛰어다닐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