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른 순간의 용기

흐림 끝에 피어난 시작

by 얼웨즈 Always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내가 한 걸음 떼지 않았을 뿐이다.”


오래전 서울랜드 식물원 유리벽 너머 식물을 필름카메라로 담았던 한 장의 사진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나의 시간과 닮아 있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연재한 사진 에세이 ‘머무른 순간, 흐르는 생각’을 마무리하며 깨달았다. 시작 전의 두려움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결단의 문제였다는 것. 작은 도전이 결국 큰 성취로 이어진다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진리를, 이번 작업을 통해 몸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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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벽 너머의 식물은 또렷하지 않았다. 빗물인지, 습기인지, 혹은 시간의 흔적인지 모를 점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필름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초점은 선명하지 않았고, 빛은 고르지 않았으며,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셔터를 눌렀다.


지금 돌아보면, 그 한 번의 셔터가 이번 연재의 시작과 닮아 있다. ‘과연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늘 따라붙었다. 글쓰기라는 도전은 생각보다 외로웠고, 방향을 잃은 날도 적지 않았다. 매 회차를 채워 넣으며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이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그러나 사진이 가르쳐준 것이 있다. 선명함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흐림 속에서도 분명 존재는 살아 있다는 사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명확한 답을 찾으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에 가깝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결과는 알 수 없으며,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작을 망설인다.


이번 브런치북 작업 역시 그랬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은 꼬리를 물었다. 콘셉트는 적절한지, 구성은 매끄러운지,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전’이라는 단어는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성공은 거창한 성과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작은 글 하나, 한 장의 사진, 한 번의 업로드. 그 사소한 반복이 결국 ‘성취’라는 이름으로 쌓였다.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행동은 그것을 조금씩 밀어냈다.


사실 우리는 능력이 부족해서 주저하는 경우보다, 실패를 상상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멈춘다. 나 역시 그랬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잘해야 한다는 부담, 평가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알게 되었다.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현실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그림자였다는 것을.


유리벽 너머 식물은 분명 또렷하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함 덕분에 오히려 오래 남는 이미지가 되었다. 만약 모든 것이 선명했다면, 나는 그 장면을 이렇게까지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 예상과 다른 결과, 삐걱거리는 과정. 그것이 오히려 이야기가 되고, 깊이가 된다.


이번 연재를 통해 나는 ‘시작’의 힘을 다시 배웠다. 자기계발서에서 수없이 보아온 문장이 아니라, 몸으로 겪은 체감이었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진심이면 충분하다.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던 첫날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조회 수 하나에도 마음이 출렁였고, 공감 버튼 하나에 하루의 기분이 달라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숫자는 배경이 되었고, 남은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끝까지 써보겠다는 다짐. 그 약속을 지켜낸 지금,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사진 에세이로서는 마지막 장을 넘긴다. 유리벽 너머 흐릿한 식물처럼, 나의 시간도 한때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셔터를 누른 순간, 글을 올린 순간, 멈추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마다 길은 조금씩 드러났다.


혹시 지금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다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여도 괜찮다. 두려움이 있다는 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니까. 중요한 건 의지의 크기다.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반복된 선택은 결국 방향을 만든다.


나는 작지만 분명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것이 대단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어제의 나를 넘어선 오늘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시작하라. 지금 당장, 작은 것부터. 한 줄을 쓰고, 한 걸음을 떼고, 한 번 도전해 보라. 인생은 선명해진 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 뒤에 선명해진다.


머무른 순간은 지나가지만, 흐르는 생각은 결국 우리를 앞으로 데려간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