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작은 두드림 02: 내신 수학 시험을 두 시간으로 바꿨을 때
IMF 시절의 편입, 뜻밖의 임용...
삶의 전환점은 늘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내가 처음 교단에 선 이후, 학교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학생들을 위한 작은 변화가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교단에 선 첫 학기였다.
그동안 마음속에서만 조용히 품어온 작은 의문이 있었다.
통상 수학 시험 시간은 50분.
하지만 25문항을 이 시간 안에 모두 풀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문항 수를 줄이면 배점이 과도하게 커져 단 하나의 실수로도 과목석차가 뒤바뀌는 문제가 발생했다.
공부 자체로도 버거운 아이들에게, 시간 부족으로 실력이 왜곡되는 것은 교육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동료 교사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수학시험을… 두 시간으로 늘리면 어떨까요?”
예상과 달리, 같은 학년 선생님 두 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찬성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연구부장 선생님을 설득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물론 시험 감독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모든 교사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연구부장 선생님은 말씀 대신 묵직한 침묵 속에서 잠시 고민하셨다.
나는 숨을 고르고, 그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학생들이 문제를 이해하고,
자기 실력대로 풀이할 시간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속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평가해야 합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선생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셨다.
“좋은 취지네. 내가 밀어줄 테니 해보게.”
그 말 한마디에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있던 작은 바람이
현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술적 이유로 시험은
1시간 객관식 + 1시간 주관식으로 나누었다.
주관식은 핵심 개념 중심으로 구성해
난이도는 지나치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진짜 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먼저 변화한 건 중위권 학생들이었다.
“선생님, 이번 시험은… 진짜 시험 본 느낌이 났어요.”
속도가 아니라 이해와 풀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경험.
그 작은 변화를 학생들이 정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이듬해, 다른 학년에서도 같은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내 작은 시도가
학교 전체의 문화를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바꾼 것은 시험 시간이 아니었다.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을 더 깊게 보기 시작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말했다.
“사람은 진정으로 이해받는 순간 변화할 용기를 갖는다.”
학생들도 그랬다.
조금 더 이해받고,
조금 더 여유 있는 환경에서
조금 더 자기 실력을 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두 시간짜리 시험은 단순히 제도를 바꾼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속도가 아닌 이해를,
점수가 아닌 성장을 바라보게 한 내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뚜렷한 신호였다.
나는 학생들을 더 깊이 이해하려 했고,
이 태도는 자연스럽게 상담이라는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다.
삶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결단이 아니다.
마음이 진정으로 향하는 쪽으로 아주 작게라도, 진정성을 담아 움직이는 일이다.
그 작은 움직임이 학생의 인생을, 학교의 문화를, 그리고 결국 내 인생 전체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