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두드림 01: 삶을 바꾸는 건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늘 조용히,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아니, 어쩌면 나만 몰랐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랬다.
여행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집전화의 깜박이는 불빛을 발견하고 수화기를 집었다.
“야 인마, 너 어디야? 음성 메시지 확인하면 바로 전화해.”
오랫동안 모교에서 나를 지켜보던 은사님의 목소리였다. 평소보다 한 박자 더 급했다.
전화를 걸자, 한 문장이 바로 날아왔다.
“지금 바로 지방으로 내려와!”
그 말이, 내 교직 인생의 첫 문을 열었다.
1997년 겨울.
모두가 앞날을 잃어버린 듯 흔들리던 IMF 시절이었다.
나 역시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버틴다'는 말 외에는 의미 있는 단어가 없었다.
그때 후배가 말했다.
“형, 편입학 학원 좀 같이 가줄래?”
그저 따라가 준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닫혀 있던 사범대 일반편입이 처음으로 열린다는 것이었다.
마침 서울의 한 대학이 3학년 편입시험을 시행했다.
나는 수학을 전공했고, 그 무렵 교육대학원을 생각하며 토플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 유형도, 흐름도 놀라울 만큼 자연스레 맞아떨어졌다.
결과는 더 뜻밖이었다.
후배는 지원한 세 곳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지만,
나는 단 한 곳 지원했는데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멀리서 보면 우연처럼 보이는 이 흐름은,
가까이서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 같았다.
편입 후의 삶은 쉽지 않았다.
지방 국립대 장학생으로 편한 집 생활에서,
아무 연고 없는 서울 사립대와 반지하로.
등록금은 부담이었고,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 맨 앞자리,
도서관 열람실 첫 번째 입실자로.
장학금을 유지하는 것이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만큼 몰입했던 때가 또 있었을까.
순수했고, 뜨거웠고, 단단했다.
4학년이 되자 교생실습 학교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은사님이 연락을 주셨다.
“모교에서 실습하는 게 어때?”
학과에서도 지방에서도 실습할 수 있었지만,
나는 은사님의 제안을 따랐다.
그 선택이 다시 한번 길의 복선이 되었다.
그해 2학기, 교사 정년이 갑작스레 단축되며
학교에 공석이 생겼다.
그리고 은사님에게서 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나는 곧바로 지방으로 내려가 은사님과 교장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일주일 동안 깊이 고민할 시간을 얻었다.
선택지는 둘.
100% 가까운 사립학교의 임용,
혹은 10%도 넘기기 어려운 공립 임용시험.
많은 선배들이 시험 결과가 현실을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사립학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내 교직 생활은 시작되었다.
후배의 한마디,
은사님의 전화,
반지하의 밤들,
모교로 향한 결정들.
그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가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기에 이어졌던 흐름들이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마음이 기회를 알아보게 했다.
루이 파스퇴르가 말한 것처럼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미소 짓는다.”
나는 그 미소를 알아볼 만큼 수없이 넘어지며 준비된 사람이었을 뿐이다.
후배의 요청,
은사님의 전화 한 통,
반지하의 불 꺼지지 않던 밤,
교실에서의 첫 수업.
그 모든 ‘작은 두드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크게 흔들리지 않는 선택도,
다시 돌아보게 한 질문들도,
다 결국 작은 움직임 하나에서 시작되었음을 나는 그때 알았다.
돌아보면, 내 삶은 늘 작은 두드림이 길을 열어왔다.
그리고 그 두드림을 알아보는 눈은 경험 속에서 천천히 자란다.
앞으로도 나는
‘삶이 전환되는 순간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
누군가의 조용한 움직임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내 글을 통해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