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방향을 선언하던 날

나를 품은 우리 05: 허례허식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고

by 낙천지명

아내와 데이트를 하며 우리는 결혼 준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냈다. 미래를 설계하는 대화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늘 다정한 일상의 연장이었다. 우리는 각자 직장 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을 투명하게 공유했고, 같은 금액을 보태 집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나이가 있는 만큼 우리의 선택은 지독히 현실적이었다.

전세로 시작한 불안정함보다, 수도권 외곽이라도 작게나마 우리 명의의 집을 사서 안정적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남은 돈으로는 작은 차 한 대면 충분했다. 결혼은 남에게 보여주는 화려한 쇼가 아니라, 매일의 끼니를 챙기고 숨을 쉬는 생활 그 자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담백한 가치관이 일치했기에, 우리는 남들이 말하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나 호화로운 예식장이나 전문 사진사라는 선택지를 단번에 지워낼 수 있었다.


주례 없는 예식, 우리만의 속도로 채운 공간

늦은 결혼이었기에 얻을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은 양가의 간섭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라.” 그 한마디는 우리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었다. 우리는 뷔페식당의 돌잔치를 주로 하던 80석 남짓한 작은 공간을 빌렸다. 주례는 아예 두지 않았다. 대신 장인어른께는 축사를, 나의 아버지께는 성혼선언문 낭독을 부탁드렸다.

예식의 사회는 신랑인 내가 직접 보았다. 신랑과 신부의 거창한 입장도 따로 없었다. 예단과 폐백도 과감히 생략했다. 우리가 준비한 예물은 오직 수수한 커플링 하나였다. 전시용 보석이 아니라 설거지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늘 끼고 지낼 수 있는 일상용 반지였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반지를 늘 끼고 있다. 그 반지에는 결혼이 곧 생활이라는 우리의 소박한 다짐이 여전히 서려 있다.


하얀 원피스와 일반 카메라가 남긴 기록

아내는 화려한 웨딩드레스 대신 단정한 하얀 원피스를 골랐다. 나는 장모님의 권유로 양복을 한 벌 새로 맞췄다. 사위를 생각하는 장모님의 그 따뜻한 마음이 감사해 기꺼이 받아 입었다. 전문 작가 대신 아내의 친구가 일반 카메라로 우리의 모습을 담아주었다. 조금은 흔들리고 구도가 완벽하지 않아도, 그날의 공기를 담기엔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격식을 덜어낸 자리에 의미를 채우고 싶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진솔하게 선언하고 싶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고마웠다.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에서 화려함을 포기하는 것이 여자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녀는 늘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봐 주었다. 덕분에 우리의 실행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불완전함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선택

결혼식을 지켜본 하객들은 "신선했다"라거나 "결혼의 본질을 본 것 같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그날의 예식은 우리에게 완벽한 성공이었다. 이 모든 선택은 혼자였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로의 삶을 온전히 존중했기에, 그리고 늦은 나이가 준 여유가 우리 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작가 앤 라모트는 "사랑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함께 감당하겠다고 선택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비로소 '나'에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었다. 우리는 결코 완벽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불완전함을 기꺼이 안아주겠다는 같은 방향을 선택했다.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우리의 앞길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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