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두드림 06: 첫 실패가 나에게 건넨 조용한 신호
서른이 되던 해였다.
여러 번 방향을 바꾼 적은 있었지만, 준비해 온 일을 정면으로 밀어붙이다 맞은 실패는 처음이었다.
그전까지의 변화는 선택이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 길이 내 길일 것’이라 믿어 왔기에, 실패는 예상보다 더 조용하고 깊게 내려앉았다.
그해 전문상담교사 채용은 시·도교육청 단위로 첫 시행되었다.
각 교육청은 소수만 선발했고, 나는 소속된 시교육청 시험에 응시했다.
필기시험은 무리 없이 통과했지만, 다음 관문으로 논술과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논술 준비로 분주하던 어느 날,
오래 알고 지낸 선배 교사가 나를 불렀다.
“교육청에서 자네가 유력하다고 하더군. 교장선생님께 미리 알리는 게 예의일세.”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절반쯤 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립학교 교사였기에, 합격하면 퇴직 후 교육청으로 옮겨야 했다.
아직 발표도 나지 않았지만, 선배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교장선생님은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미묘하게 굳은 표정이 마음에 남았다.
말보다 표정이 더 오래가는 때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그리고 발표일이 왔다.
결과는 불합격.
순간 마음속에 작은 진공이 생겼다.
논술이 약했을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지만, 납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서는 “괘씸죄 아니야?”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나는 그 말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면접장에는 연륜 있는 교사들이 많았다.
상담교사 제도 도입을 시작하던 과도기였기에, 교육청은 안정감 있는 경력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조금 풀렸다.
실패를 온전히 내 탓으로만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그 시기,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학생 상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젊은 교사’라는 이유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처음 느꼈던 상실감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 실패는 나를 다시 겸손하게 풀어냈다.
교사 6년 차에 접어들며 스스로도 모르게 편안한 매너리즘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실패를 겪으며 비로소 솔직하게 인정했다.
“나는 아직 미완성이다. 다시 배워야 한다.”
상처는 얇지만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 아픔은 내 자존심을 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음을 위해 나를 다듬는 시간이 되었다.
불합격은 나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리 가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 속에서 대학교 강의를 맡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실패였지만, 내면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조용하게 열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되돌아보면 그 순간은 분명한 전환점이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는 말했다.
“인간은 항상 미완성이다.
그러나 그 미완성이 성장의 시작이다.”
그 말은 그 시절의 나를 거의 완벽하게 설명한다.
미완성이었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
준비된 사람만이 흐름을 바꾼다.
그 첫 실패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같았다.
돌아보면, 그 실패는 삶이 건넨 조용한 신호였다.
“너는 아직 끝이 아니다.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가라.”
나는 그 신호 덕분에 지금까지
배우고, 움직이고, 확장하며 살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