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두두림 07: ‘태도’가 길을 여는 힘을 경험
삶은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슬며시 문을 열어주곤 한다. 첫 실패를 겪은 뒤, 나는 한층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대학원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그 아픔을 배움으로 채워가던 시기였다.
배움에 다시 집중하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마음의 결을 정리해 가던 어느 날, 지도교수님이 나를 부르셨다.
"이번 학기에 학부생 대상으로 심리학개론 야간 강의를 맡아줄 수 있겠어요?"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보통 박사 과정을 수료한 선배들이 맡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박사 과정 중이었기에 교수님께 여쭤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선생님은 현장 경험이 있잖아요. 그리고 수업 태도가 좋아서 교수회의에서도 모두 동의하셨어요."
교수님은 나의 현장 경험과 태도를 높이 사주셨다. 그 신뢰 덕분에 나는 어느덧 90여 명의 학생이 기다리고 있는 강의실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실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삶은 나를 다시 새로운 흐름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첫 강의를 앞두고 밤잠을 설쳤다. 90명의 시선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내 강의가 그들에게 의미 있을까. 불안과 설렘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수학이 아닌 심리학개론이라는 교과목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이라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강단에 서며 나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다짐했다. 그것은 지난 시간 나를 다듬으며 깨달았던 정직한 태도와 닮아 있었다.
첫째는 출석의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대학생도 성인이며 자신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성적 반영 비율을 미리 공지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다.
둘째는 공정한 시험 운영이었다. 내가 학부 시절 느꼈던 시험의 느슨함이 늘 아쉬웠기에, 중간·기말고사에는 네 명의 감독자를 배치하고 좌석을 일괄 지정하는 엄격함을 유지했다. 처음엔 학생들이 당황했다. "대학교 시험이 이렇게 엄격해도 되나요?"라는 질문도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기준이 명확해야 신뢰가 생긴다는 것을. 학기 말 설문에서 학생들은 뜻밖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가장 공정해서 신뢰가 가는 수업이었습니다."
내가 세운 기준이 차가운 벽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신뢰 덕분에 나는 다음 해에도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었다.
방학에는 교육대학원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 수업까지 맡게 되었다. 나보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들 앞에 서는 일은 또 다른 긴장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나를 도왔다. 무엇보다 대학원 생활 내내 보여준 성실함이 교수님들께 좋은 신호로 작용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우리 아들이 교수까지 됐네"라며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비록 시간 강사일지라도 어머니에겐 정교수 못지않은 뿌듯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 소박한 한마디는 오래도록 내 마음의 빛이 되어주었다.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강의를 준비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기회는 종종 화려한 능력보다 정직한 태도에 먼저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완벽한 교수자가 아니었다. 때로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다음 시간에 보충 설명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기준을 지키고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 애썼다.
그 태도가 신뢰를 만들었고, 그 신뢰가 다시 새로운 기회를 불러왔다. 내 삶의 방향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길을 열어준 것은 결국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가'라는 태도의 문제였다.
90여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일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처음엔 떨렸다. 목소리가 떨리고, 손에 땀이 났다. 하지만 학기가 진행되면서 달라졌다. 그 수많은 표정과 반응을 세밀하게 읽어내는 연습은 상담가로서의 시야를 넓혀주는 값진 훈련이 되었다.
어떤 학생은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고, 어떤 학생은 조는 척하며 사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드러냈고, 어떤 학생은 침묵 속에 모든 것을 담아두고 있었다. 강의실은 작은 세상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사람을 읽는 법을 배웠다.
강단에서 나는 미묘한 균형감을 배웠다. 기준만 앞세우면 관계가 멀어지고, 관계에만 치중하면 기준이 무너진다. 이 배움은 훗날 학교 현장에서 상담하며 중심을 잃지 않는 큰 힘이 되었다.
윌리엄 제임스는
"행동은 마음을 만들고, 마음은 삶을 만든다"라고 했다.
강단에 서며 느꼈던 책임과 열정, 그리고 기준을 세우는 단호함이 모여 내 삶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삶은 나를 시험하기 위해 시련을 준 것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기 위해 이 무대를 내어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강단 위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당신의 태도는 어떤 문을 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