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두드림 08: 안 하는가, 못 하는가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나려던 순간, 뜻밖의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발걸음을 멈춘 그 자리에, ‘머무름이 주는 변화’가 있었다.
“사표를 쓰셔야겠네요.”
교장선생님의 단호한 말이었다.
중국 국제학교 근무를 위해 고용휴직을 신청했던 나는,
사립학교의 까다로운 규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능성이라는 조그마한 틈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남교사의 육아휴직조차 드문 시절.
고용휴직은 더더욱 허락되기 어려운 요구였다.
결국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휴직을 포기하든지, 사표를 쓰든지.”
한동안 가슴이 조여왔다.
정말 사표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그 시기 내 마음속에는 오래 붙잡아 온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안 하는가? 못 하는가?”
임용 초기의 나는 열정 그 자체였다.
시험 방식을 새로 만들고, 성적통지표 양식을 개선하고,
현실에 맞는 심리검사를 도입하고, 매월 학급 소식지와 반기별 문집을 발간할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교사였다.
그 열정 덕분에 교육감 표창도 네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였다.
내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심지어 뒤로 물러나는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거듭 물었다.
“나는 왜 변화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을까?”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주변에서는 익숙한 조언이 돌아왔다.
“다른 학교 경험이 없어서 그래.”
“자네도 학부모 되면 알게 될 거야.”
그 말들이 사실이어서 더 깊이 박혔다.
첫 학교였고, 아이도 없었다.
그래서 늘 조심했고, 늘 질문했다.
“이 시도가, 변화가 진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그 질문을 붙들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미 매너리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더 멀리, 더 넓게 배우고 싶었다.
그 갈망이 고용휴직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서류는 통과했지만
마지막 관문인 면접을 앞두고
나는 교장선생님께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며칠 뒤 돌아온 건 짧고 단호한 답이었다.
“허락할 수 없습니다.
가려면 사표를 쓰세요.”
나는 깊은 밤마다 그 문장을 되뇌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사표라는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떠남이 변화가 아니라
도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내 마음을 두드렸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변화’ 대신 ‘머무르는 변화’를 선택했다.
나는 학교 밖에서 새로운 공간을 조금씩 확보해 나갔다.
대학원 공부를 지속하면서 교수님과 협동 과제도 했고,
또다시 강의를 맡으며
내 마음의 방향을 천천히 조정했다.
그 시간들은
생각보다 더 풍요롭고 넓었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매 학기 학생이 달라지는 강의실에서의 긴장,
상담 이론을 읽으며 느낀 사고의 확장,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차분한 자기 점검.
이 모든 경험은
머무르는 동안에도
나는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돌아보면,
그 선택은 큰 배움으로 남았다.
머무름이 포기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멈춘 걸음도 방향을 바꾸는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
이 깨달음은
내 진로를 결정할 때마다
가장 신뢰하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칼 로저스는 말했다.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변화한다.”
그 문장을 나는
그때 비로소 이해했다.
변화는 도피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
그 깨달음은
내 삶을 다시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