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한가운데서 시작된 질문

내 삶의 두드림 09: 교실 바닥의 휴지 하나를 주우며

by 낙천지명

교감선생님의 부탁으로 전 교직원 앞에서 학급 운영에 대해 발표하던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한 문장을 조심스레 꺼냈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을 줍는 순간마다 생각했습니다.
‘이게 정말 아이들을 위한 행동일까?
아니면 내 교실에 쓰레기가 있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움직이는 걸까?’

사람들 앞에서는 침착했지만, 사실 그 말은 당시의 나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고백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한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그 안에는 ‘좋은 교사’로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교사’라는 껍데기

그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도착해 저녁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았다.
누가 시킨 것도, 특별한 보상이 약속된 것도 아니었다. 딱 하나, “담임으로서 더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 열심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걸까? 아니면 나를 확인하기 위한 걸까?’

그 질문은 나를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순진했던 이상, 그러나 진심이었던 때

교사 생활 초반의 나는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고 굳게 믿었다.
어른들의 잘못이 결국 아이들에게 흘러간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렇게 다짐했었다.

“1년에 두 명이라도 이상을 품은 아이를 만들자.
그 아이들이 또 두 명에게 영향을 주면, 60년 뒤에는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순진했지만, 그만큼 진심이 담긴 다짐이었다.
하지만 교실은 이상보다 훨씬 복잡한 곳이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방식이 좋은 건 알아요. 근데 너무 이상적이에요.
우리는 이미 체벌에 익숙해요. 그런 선생님 방식이면 오히려 만만하게 보일 때도 있어요.”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았다.


변화보다 ‘적응’을 요구하는 곳

학교는 변화가 아닌 ‘적응’을 더 많이 요구하는 공간이었다.

열정으로 가득하던 젊은 교사들도 몇 년이 지나면 대부분 기존 방식에 익숙해졌다.
나 역시 그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변한 걸까, 아니면 적응한 걸까?”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질문이 나를 멈추게 했다는 점이었다.


멈춤이 가르쳐 준 것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 ‘두려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실패나 무기력이 아니라 성찰을 요구하는 신호였다.

이상이 틀렸던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이 나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했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나를 몰아붙였던 순간들도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행동은 지금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열심이라는 이름의 습관보다 의도와 방향을 더 살피려 했다.


속도를 되찾는 시간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말했다.
“어떤 순간에는 멈추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 문장이 나의 혼란을 부드럽게 녹였다.
머무름은 후퇴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길로 건너가기 위한 숨 고르기였다.
멈춘 순간에야 비로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였다.

그 느린 속도는 나의 본성을 다시 찾아주는 힘이 되었다.


내 삶의 두드림, 그리고 또 한 번의 발견

돌아보면, 이 경험은 ‘두드림’의 또 다른 형태였다.
문을 두드렸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두드린 시간이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어렵지만, 그 과정을 지나야 다음 계절을 준비할 수 있다.

머무름은 멈춤이 아니다.
그리고 혼란은 끝의 신호가 아니라, 변화가 다가오는 작은 예고음이었다.
결국, 사람은 자기 속도로 돌아온다.
그 속도를 찾는 일이, 내가 아이들을 만나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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