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지 못했던 건, 떠나야 할 때

내 삶의 두드림 10: 놓아준 마음이 다시 흔들림

by 낙천지명

교사 10년 차였던 어느 해, 겉으로 보이는 나의 하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근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고, 상담을 하고, 서류를 정리하는 일상의 반복.
그러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참아온 감정들이 한 겹씩 쌓이며, 어느 순간 견고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나는 조용히 사표를 썼다.
손끝이 떨리지는 않았다. 다만 오래 눌러온 감정이 천천히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 선택이 ‘정리’라고 믿었다.


놓아준 마음이 다시 흔들릴 때

전문상담교사 전직에 실패한 경험은 이미 과거로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듬해 가을, 새 공고가 뜨자 마음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정말 끝난 걸까? 아니면 애써 외면한 걸까?’

남은 시간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교실 뒤에 앉아 아이들과 문제집을 풀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타 도교육청을 지원하여 필기는 합격했지만, 논술과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이번에는 담담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더 깊게 쓰렸다.
“준비 부족이야.” 그렇게 위로하며 넘어가려 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자책이 더 컸다.

‘왜 또 시도했을까?’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용기가 없던 시절

그런 마음으로 교직을 이어가는 일은 더 힘들었다.
그래서 다음 해 여름, 나는 사표를 냈다.
이번에는 내 마음이 이미 학교 밖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전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이 따뜻하게 만류했다.

“선생님은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 말이 고마웠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들의 기대 때문이었는지,
나는 끝끝내 사표를 찢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불편해졌다.
“선생님은 천생 교사예요.”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나를 붙잡아 두는 끈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떠난 줄 알면서도 학교에 남아 있는 시간은

오히려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나를 잃기 전에 해야 했던 선택

아이들과의 관계는 흔들리고, 실수도 잦아졌다.
아이들에게 미안함만 커졌다.
‘이 상태로 계속 있다가는 더 크게 실수할지도 모르겠다.’
이 불안은 점점 깊어졌다.

결국 다음 해, 나는 두 번째 사표를 냈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사표를 제출한 날, 나는 휴대전화를 꺼두고 곧장 시골 부모님 댁으로 내려갔다.

부모님께 말했다.
“저 믿으시죠? 딱 2년만 기다려 주세요.”

그 말에는 두려움과 확신이 동시에 있었다.
나는 짐을 정리해 서울로 올라갔다.
무엇을 할지 정확히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분명한 건—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첫 발걸음이 그날 놓였다는 사실이었다.


멈춰 서야만 보이는 것들

돌아보면 떠남은 도망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랜 시간 참아온 마음의 목소리가 더 이상 묻힐 수 없었기에 가능했다.

두 번의 탈락과 두 번의 사표는 실패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적응’과 ‘소진’의 경계에 서 있었다.
때로는 적응처럼 보였고, 때로는 소진이 더 가까웠다.
그러나 떠나기로 한 결단은
그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가장 솔직한 선택이었다.

빌 브래들리는 말했다.
“결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진짜 용기는 결단 이후에도 계속 나아가는 일이다.

떠난다는 결정보다 더 어려운 일은
떠난 자리에서 다시 나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마음은
그 길을 통해 조금씩 되살아났다.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사람은 외부에서 먼저 흔들리는 것 같지만,
사실 변화는 내부에서 먼저 일어난다.
내부의 변화가 충분히 차오르면
결국 밖으로 향할 힘이 생긴다.

떠남은 파괴가 아니다.
기운이 새로운 흐름을 찾아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오랫동안 참고 서 있던 자리를 떠나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아주 단순했다.

“나를 잃지 않는 쪽으로 가자.”

그 문장을 붙들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덕분에 나는 지금의 마음을 얻었다.

머무름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떠남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마음의 방향이 먼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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