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스스로를 규정하는가?
우리는 타인을 단어로 규정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더 자주, 더 깊게 작동하는 것은 스스로를 규정하는 단어들이다. “남자가”, “여자가”, “오빠가”, 혹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와 같은 말들은 자신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행동의 범위를 미리 정해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그 안에는 이미 기대되는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남자가 이걸 왜 해”, “여자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오빠니까 참아야지”라는 말은 선택의 문제를 성격이나 역할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상황과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에 의해 미리 정해진다.
이때 행동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규정의 결과가 된다. 하고 싶은지, 해야 하는지보다 먼저 “어떤 사람인가”가 기준이 된다. 단어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보다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을 먼저 배우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외부에서 주어진 기준은 점점 내부로 들어온다. 더 이상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같은 방식으로 규정하게 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이런 건 못 해”라는 말은 설명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내리는 결론이 된다. 그렇게 선택은 줄어들고,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좁아진다.
타인을 규정하는 단어는 때로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규정하는 단어는 내부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로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어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가. 스스로를 설명한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사실은 나를 제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