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발병기2
다시 어제 갔던 정형외과에 찾아갔어요
응급실 진료로는 엑스레이만 봤고 응급의학과 선생님이셨으니 정형외과 전문의 선생님께 제대로 된 외래 진료를 보려고요
그런데 마찬가지 반응이셨어요
"부기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부기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네요.. 움직이는 데도 문제가 없으니 냉찜질해보시고 겨울이라 건조해서 그럴 거예요 피부과 가보세요"
너무 힘 빠지는 소리였어요 나는 너무 아픈데 문제가 없다니..
저는 매일 바디로션도 바르고 눈으로 봤을 때 붉어짐도 없고 건조해서 피부가 튼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죠..
남편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MRI를 찍어보고 싶다고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위치가 너무 발목 관절부위라 의심스럽기도 하고
피부과에 가서도 만약 문제가 없으면 다시 정형외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하라고 할 것 같다고 그럼 두 번 걸음 해야 하니 애초에 MRI까지 찍어보고 문제없으면 피부과를 가보자고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심드렁하게 "네 그러세요 그럼. 뭐 찍어서 나쁠 거 없죠"라고 하셔서 MRI를 찍게 되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별로 안 찍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괜히 오버를 했나.. 싶은 마음도 들고 그러니 당연히 또 별 문제없겠다고 하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피부과를 가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어요
시간이 지나고 검사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진료실에 들어갔어요
진료실에 앉자마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발목에 종양이 있네요, 종양이 신경에 영향을 줘서 아프신 것 같네요 ‘
이게 대체 무슨 말이죠..? 갑자기 종양이라니요
아무 문제없다고 피부과 가라면서요
의사 선생님도 어이가 없어 보이셨어요
"생각보다 종양이 큰데 평소에 느끼지 못했어요? 지금 오른쪽 발목이 종양 때문에 두꺼워져 있는데 모르셨어요? 그래서 약간 부기가 있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저는 몸무게에 비해 발목이 평소에 좀 두껍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발목에만 살집이 좀 있나 보다 생각했어요
다시 살펴보니 이상하리만치 오른쪽 발목이 툭 튀어나와 있더라고요
조직검사는 해봐야 정확하겠지만 ’ 거대세포종양‘으로 보이는데 이름처럼 거대하게, 또 공격적으로 빠르게 자라는 게 특징이지만 다행히 양성종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크기가 크고 아프니 얼른 제거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수술상담까지 받고 나왔습니다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 수술은 1시간 정도, 입원은 1박 2일, 깁스는 1주일 정도라고 하고 수술비는 200만 원
이렇게 간단히 상담을 받고 날짜까지 잡고 나왔어요
그런데 당장 다음날이 저희 집 이삿날이었거든요 남편도 저도 완전 멘붕..
별 거 아니겠지 며칠 지나면 좋아질 통증이겠지 생각하고 내일 이사준비나 잘해야겠다 했는데 갑자기 종양 제거 수술이라니..
이사준비로 정신도 없었고 어렵지 않은 수술이라니 저는 이사하고 빨리 진단받은 동네의 큰 정형외과에서 수술해버리자 했는데 남편이 그래도 수술인데 대학병원에서 하자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일하고 있는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수술하려고 알아봤는데 마침 발목 수술하는 교수님이 해외출장을
1달 동안 가신다고 하셔서 빨리 수술이 가능한 다른 대학병원을 수소문했어요
지금 당장 통증이 심하기도 하고 통증이 있는 종양을 그냥 두는 게 찜찜하다며 남편은 빠른 수술을 원했거든요
결국 남편이 수소문해서 집에서 굉장히 먼 서울의 한 작은 대학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사실 이때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BIG5 병원을 예약했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내 인생이 지금과 달라졌을까 아니면 어느 병원이었든 똑같았을까.. 하필이면 집 근처 대학병원 교수님은 왜 그때 출장 중이셨을까 이렇게 될 운명이려고 그랬나.. 하는 의미 없는 상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아픈 발목으로 이사를 마쳤고 짐 정리는 하나도 못하고 바로 수술날이 되었어요.
교수님이랑 상담하니 수술도 금방 끝난다 하고 별 거 아닌 수술이라니 남편이랑 입원하기 전에 국밥도 시원하게 먹고 스타벅스에 들려 신상 음료도 사서 기분 좋게 입원하러 들어갔어요.
병원 저녁밥 맛없다고 신청도 안 하고 남편이 떡볶이 사 와서 같이 먹고 제가 과자 먹고 싶다고 해서 과자도 같이 먹으면서 "병캉스 온 것 같다~" 하며 남편이랑 늦은 시간까지 하하 호호 웃으며 티브이도 보고 웃으면서 잠에 들었어요.
다음날 아침 첫 수술이었는데 가족들이 조금 늦게 와서 혼자 머리도 양갈래로 묶고 수술실도 혼자 씩씩하게 웃으며 들어갔어요
이 사진이 제 인생에서 통증 없이 서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되었네요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수술실에 들어갔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