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향한 과정
인도네시아에서의 유학과 아세안 활동을 마친 뒤, 나는 자연스럽게 해외취업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처음 해외취업을 준비할 때 가장 크게 느낀 장벽은 경력직 선호 기조였다. 기업들은 신입보다는 이미 경험을 쌓은 인재를 원했고, 나는 신입으로서 경쟁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십 번 고쳐 쓰고, 다양한 기업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서류 단계에서 탈락했다. 간혹 면접 기회가 주어져도 “경력직을 우선한다”는 답변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당시 상황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채용 시장이 전반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채용 공고 자체가 줄어들었고, 기업들은 신규 채용에 보수적이었다.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그야말로 ‘빙하기’ 같은 시기였다. 비자나 언어 문제는 없었지만, 신입으로서의 한계와 팬데믹 시기의 불확실성은 나를 여러 번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은 매일이 불안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내가 가진 경험이 과연 충분한가?”, “언제쯤 기회가 열릴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어려움은 나에게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했다. 단순히 아세안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의 다른 무대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나는 점차 유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단순히 취업 시장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럽의 제조업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동유럽과 중부유럽은 새로운 제조업의 성장 엔진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폴란드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유럽 내에서 자동차, 전자, 기계 산업의 중요한 생산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확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에 진출해 있었다. 배터리, 자동차 부품, 전자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새로운 기회와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점은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단순히 유럽이라는 낯선 무대가 아니라, 한국과 연결된 산업 생태계 속에서 내가 배운 경험을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폴란드라면 내가 가진 경험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점점 커졌다.
그 결심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글로벌 영 챌린저(GYC) 프로그램이었다. 신한금융재단과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주관한 이 과정은 청년들이 글로벌 산업을 이해하고 해외 진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국내과정을 수료하며 유럽 산업과 취업 시장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커리큘럼은 글로벌 산업 이해, 해외 취업 역량 강화, 현지 언어, 비즈니스 영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단순히 ‘취업’이 아니라 ‘글로벌 현장에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은 나에게 조기취업을 결심할 용기를 주었다. 국내연수 후 해외연수를 기다리기보다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국내과정을 마친 뒤, 나는 곧바로 현지과정이 아닌 폴란드 내 한국 기업에 취업했다.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배운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다시 꺼내 들었다. 현지 동료들과 소통하며 업무를 익히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공급망 관리 업무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긴장감이 컸다. 글로벌 공급망은 단순히 물류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와 변수를 조율하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문제와 마주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는 빠르게 성장했다.
작은 도시에서의 생활은 단순히 근무지가 아니라, 나에게는 세계가 연결되는 현장이었다. 업무와 생활 속에서 나는 ‘해외취업’이라는 목표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라, 나를 세계와 연결하는 또 다른 배움의 과정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