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태양

O Sole Mio

by 김환

2018년 여름, 나는 갑상선 절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두려움은 수술 그 자체보다,

오래 써온 ‘목소리’에 닿아 있었다.


대단하고 훌륭한 삶은 아니지만

목소리는 내가 지나온 삶의 흔적이었다.


확진까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몸과 마음은 함께 작아졌다.


어느 날,

지금의 목소리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 세상의 소리는

이전과 다른 질감으로 들려왔다.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성악 아카데미에 한번 등록해 보는 게 어때요?”


그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두어 달을 망설인 끝에

나는 마지막일지 모를 무대를 위해

문을 두드렸다.


선택한 노래는 <오 솔레 미오>였다.


밝고 낙천적인 선율 아래,

고향을 잃은 이의 마음이 스며 있는 곡.


러시아에서 고향의 태양을 그리워하던 카프로의 시에

디 디 카푸아가 선율을 붙였다.

타국에서 태양을 떠올린 마음이

한 줄의 노래로 남았다.


그 사연이

그때의 나와 닮아 있었다.


노래의 심장은 하바네라 리듬이었다.

쿠바에서 건너온 그 당김음은

남쪽의 태양처럼 느긋하게 흔들렸다.


나는 2014년 하바나에서

그 리듬을 처음 몸으로 배웠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박자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삶이 나를 당겨왔다.


디 카푸아는 클래식 작곡가를 꿈꾸었으나

삶은 그를 칸초네로 이끌었다.


가난 속에서 생을 마쳤지만

그는 태양 같은 선율을 남겼다.


그 빛 한 조각이

수술 한 달 전 나를 비추었다.


아내의 권유로 시작된 성악 아카데미에서

나는 다시 목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발표회를 보름 앞둔 어느 날,

고희를 맞은 처형은

자신의 생일보다

지나온 시간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그 부탁을 들은 뒤로

내 목소리를 점검하지 않았다.

음정도, 떨림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 노래가

그의 젊은 날에 닿기만을 바랐다.


2018년 11월 23일,

1부 두 번째 순서.

무대 뒤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조명이 켜지자

객석은 검은 바다처럼 보였다.


손끝이 차가웠다.

마이크를 잡지 않았는데도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목 안쪽이 마른 종이처럼 바스락거렸다.


반주자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그 첫 음이 울리는 동안,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이 음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첫 구절이 입 밖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얇은 소리였다.

그러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나는 음을 붙들었다.

밀어 올린 것이 아니라,

매달리듯 따라갔다.


어느덧, 마지막 프레이즈.

숨이 짧아졌다.

가슴 깊은 곳을 긁어 올리듯

끝 음을 내보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박수


조명은 여전히 뜨거웠고

나는 무대 위에서

한 박자 늦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아직 내 안에 태양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오 솔레 미오>는 희망의 노래가 되었다.


토론토의 늦은 저녁,

나는 소리를 키우지 않았다.


고국의 민주화와

이민자의 노동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지인의 미수연에서,


그가 지나온

투쟁과 노동 앞에서

이 노래는

힘을 과시할 이유가 없었다.


태양은

그를 비추는 쪽으로

조용히 방향을 바꾸었다.


얼마 전에는 손녀의 첫돌.

그날은

숨을 걱정하지 않았다.


2절의 가사를 바꾸며

태양의 이름을 불렀다.*


이 노래가

더 이상 시험이 아니라

축복이 되었음을 알았다.


스탕달은 이탈리아를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장화”라고 했다.


그 말처럼

이 노래의 선율에는

남쪽의 태양과 깊은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2019년 초겨울,

나는 세인트 캐서린의 지인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매형은 이탈리아 남부 출신이었다.


그가 손수 지은 소형주택의

지하 저장실에는

프로슈토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올리브유와 건파스타,

고향의 향을 간진한 식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저장 공간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시간의 방처럼 보였다.


와인이 몇 차례 오간 뒤,

나는 감사의 뜻으로 <오 솔레 미오>를 불렀다.


노래가 끝난 뒤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하 저장실의 공기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그날 나는 알았다.

이 노래가

내 고향을 떠나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건너간다는 것을.


2020년 새해를 앞두고

그는 와인 한 병을 보내왔다.

아내와 함께 잔을 기울이며

그의 침묵을 떠올렸다.


곧 팬데믹이 닥쳤고,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의 공기와 노래는

여전히 또렷하다.


예전 같지 않은 목소리는

그저 세월의 흔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시간이 지나갔다.


2024년 9월 20일,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포지타노로 향하던 길.


지중해를 품은 나폴리 항은

고요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것처럼.


나폴리(오솔레미오).jpg

멀리서 바라본 베수비오산과 나폴리 항


짠 공기가 호흡에 스며들며

마음 한쪽이 천천히 풀어졌다.


노래는 무대 위에서만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버티게 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숨결이었다.


그 무렵 나는

이 노래를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태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조용히 떠오르고 있다고.


"Che bella cosa, na jurnata’esoe

O sole mio sta nfronte a te “


“오 맑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 “오 나의 손녀, 나의 단아-시에라(O my granddaughter, my dear Danha-Siera),

넌 나의 햇빛이로다(You have become my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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