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날 웃으며, 같은 날 가자."
어머니와 함께 산 세월이 벌써 30년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후, 당시 나는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아내와 두 딸은 가장의 선택에 기꺼이 동의해 주었고, 함께 이 길을 걸어왔다.
시간이 흘러 두 딸은 장성하여 출가를 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지금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나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당시 어머니는 젊은 시절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못마땅한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아내가 밖에 나가서 제 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당장 전화를 거셨다. ‘너 어디냐? 언제 돌아오냐?’는 식이었다. 아내는 어머니 눈치를 보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항상 기세가 등등했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반면에 음식 솜씨는 뛰어나셨다. 식혜, 수정과 약밥을 만들어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멸치볶음, 우엉 조림, 진미채를 나누어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는 곳마다 환영받으셨다. 그러나 그 불 같은 기질 때문에 마음이 여린 아내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였다. 외출이 제한되자, 어머니는 점점 바깥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하셨고, 이후 치매 증상이 서서히 나타났다. 자주 가시던 친구 집을 찾지 못하시고, 말 수가 줄어 들었다. 자기들끼리만 말한다며 핀잔을 하셨다. 처음에는 치매인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력은 점점 더 약해지셨다.
대중 교통을 어려워 하시자 자동차로 모셔서 친구집에 데려다 드렸다. 이 일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과로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만 갔다. 방법을 찾던 중 주간보호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을 돌보는 제도였다. 문제는 등급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치매약을 복용중에 있어서 등급을 받게 되었고, 인근에 있는 주간보호센터를 탐방해서 등록을 마쳤다. 잘 적응하실지 우려를 했지만 다행히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만족하시는 눈치셨다. 간식과 식사가 제공되고, 마치 유치원생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었다.
그렇게 하기를 3년이 지난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조차 분간하지 못하신다. 나는 그저 “주인 아저씨”가 되었고, 아내는 “주인 아줌마”로 불린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야, 엄마.”
그렇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잠시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저씨’로 돌아간다.
아들과 며느리의 입장이 사뭇 다르다. 정신적으로 노화를 겪지만 신체적으로 건강한 어머니의 모습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일상을 세심하게 돌보아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는 일상의 간병 이외에 일주일에 두 번 목욕을 시켜 드려야 했고, 속옷도 일회용 기저귀로 갈아 입혀야 했다. 아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아내가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어머니의 강한 성격 아래에서 힘들어했던 그녀는 지금 치매로 인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정성껏 돌보고 있다.
우리 부부도 이제는 60대 중반을 넘어섰다. 어머니와 함께 지낸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여행도 다녀오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아내를 바라볼 때면 마음이 짠하고, 미안함이 밀려온다.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이란 이유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인구 고령화 양상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90대의 부모를 70대 자녀가 돌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현실이다.
지금의 어머니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작 나 자신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때, 과연 누가 곁에 있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자녀들에게 그 기대를 전가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남은 사람의 공허함은 상상조차 어렵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같은 날 죽자”고 이야기해 본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내에게 의존하는 것이 버겁고,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를 향하여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서로의 추한 꼴을 맞닥트리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현재의 복지제도나 정부의 지원책은 분명 필요하고 고마운 일이다. 연일 노인 위주의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노인 일자리 창출, 노령 연금, 실버 주택,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일 수 있다. 단순히 돈과 정책의 문제만은 아니다. 함께해 줄 사람, 따뜻한 손길, 그리고 늙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문제다.
이제 나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자주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호수 길을 산책하고, 소파에 앉아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과거의 고생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 알 수 있다. 미래의 불안함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어머니의 치매가 나에게 준 교훈은 단 하나였다.
늙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함께 감당할 사람이 있다면 감사한 인생의 또 다른 계절이라는 것. 어머니를 간병하는 아내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당신 곁에는 내가 있다는 말로 대신해 주고 싶다.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오늘도 다짐한다.
"우리, 같은 날 웃으며, 같은 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