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타인을 이해하는 법…
분만실로 발령을 받았지만
여성전문병원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대학병원의 분만 건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가장 어린 신졸 간호사였던 너는
흉부외과로 가게 되었지.
생명과 직결된 장기인 심장과 폐.
그곳은 늘 생사와 맞닿아 있었고,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곳이었다는 걸
나는 알아.
흉부외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는 바로 밤근무에 투입되었고,
그 시절 밤근무엔 보통
환자 50명을 전담하는 인력으로
간호사 두 명뿐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박간호사.
흉부외과 첫 나이트 근무에
응급상황이 두 건이나 동시에 터졌잖아.
이미 3년 차 간호사였지만
소아과, 신생아 중환자실, 분만실의 경험은
메이저 흉부외과를 감당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아.
그 밤, 너는 밤새도록
나이트 chief였던 선배 간호사에게
야단과 질책을 들으며 일했겠지.
흉부외과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마음은 계속 움츠러들었을 거야.
일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하필이면 미숙한 너라서
환자와 그 가족에게 미안했을 테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자리에 놓인 게 억울했을 테고,
무엇보다 계속 질책하던 선배 간호사가
너무 야속하게 느껴졌을 거라는 것도
나는 너무 잘 알아.
아침이 되어 겨우 병원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너는 한참을 울며 생각했겠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과
사직서를 내야 하나 하는 마음 사이에서
몹시 괴로웠을 테야.
그런데 박간호사,
그 밤을 선배 간호사의 입장에서
다시 정리해 보면...
병동 환자 50명,
동시에 생사를 오가던 중환자 두 명을 케어하며
신졸 간호사를 가르치고,
일반 간호 루틴 업무까지
혼자 감당하고 있었던 밤이었지.
큰 의료사고 없이
그 밤을 넘겼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을 만큼.
박간호사,
당시 너의 입장에서는
그 선배가 야속하게만 느껴졌겠지만
그녀의 자리에서 본다면
그 질책의 목소리는 어쩌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생사를 오가던 두 생명과
후배 간호사를 의료사고 없이 지키려는
책임감과 절박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밤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었던 사람은
박간호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선배 간호사였을지도 몰라.
그 밤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다는 것도 알아.
그 어려운 밤을
무사히 함께 보냈다는 안도감,
말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서로 마음속에 남아 있던
복잡한 미안함.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그 밤의 시간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남아 있었을 거야.
만약 그 밤 이후로
너의 마음에 계속
야속함만 남아 있었다면
결국 넌
사직서를 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박간호사,
차츰 그 선배가 처해 있던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그 선배를 향하던 원망이
묘한 연대감과 연민으로
변해 가는 것을 넌 느꼈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그 밤을 지나며
알게 되었을 테니까.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그 사람이 서 있던 자리부터
보아야 한다는 걸...
상대의 단면만 본다면
너무 쉽게 미워질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처해 있던 상황까지
함께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얼굴과 마음이
보이기도 한다는 걸...
박간호사,
그 힘들었던 밤은 결국 네게
사람을 먼저 미워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준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을지도 몰라.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상황과
책임감의 무게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걸.
그리고
사람은 어쩌면
상황 속의 존재라는 것을.
같은 사람도 다른 시간, 다른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