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림 앞에서 긴장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미술을 좋아한 건지 그냥 내가 미술을 배경 삼아 일상을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릴 일은 잦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을 배울 일이 많았다. 내가 다닌 어린이집에서는 미술교육도 병행해서 그 어렸을 때부터 점묘화라든지, 소묘의 기본을 배우곤 했다.
물론 잘 그린 건 아니었다. 크레파스로 얼굴을 그릴 때는 살구색 크레파스로 얼굴을 먼저 칠한 뒤 이목구비를 그려야 얼룩 없이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1살 위 언니에게 배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가장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은 일절 않았다.
일곱 살 무렵, 아빠 손을 잡고 동네를 걷다 오르막길 옆, 미술학원 유리창을 보았다. 그 유리창은 누군가가 그린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걸 유심히 보던 나는 저 학원이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다. 혼잣말로 속삭인 단 한마디, 딱 그 한마디였을 뿐인데 부모님께서는 미술학원에 보내주셨다.
그렇게 다니게 된 학원에서 유리창에 붙은 그림의 비밀을 알게 됐다. 바로 학원 선생님께서 달마다 잘 그린 그림만 골라서 붙인다는 사실이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으나 유리창에 내 그림이 붙여지는 일은 잦았다. 그러다 어느 달, 유리창 한구석조차도 그림이 붙여지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괜히 화가 났다. 내 그림이 선생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 한 달 동안은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내 그림이 뽑혀 그다음 달에 붙여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림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분명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같이 미소 짓곤 했다. 물감이 섞여서 내가 원한 색깔을 칠하는 것, 상상하기만 했던 것을 내가 눈앞에 그려내는 것, 선생님이 내주시는 주제에 맞춰 기발한 생각을 하는 것들이 즐거웠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선생님의 각별한 애정도 좋았다.
초등학교를 올라가서 또래 아이들보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지했다.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이 게시판에 붙어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와서 내 그림 앞에서 내 이름을 말하며 웅성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동시에, 나보다 잘 그리는 친구의 칭찬을 옆에서 듣게 되는 일도 잦았다. 나는 그런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그림 칭찬을 받을 때마다 남몰래 인상을 썼다.
나보다 잘 그리는 친구는 한둘이 아니었다. 종합장에 창작 만화를 그려 연재하는 친구, 수채화 표현이 성숙한 친구, 만화 캐릭터를 스케치도 없이 그리는 친구….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그 친구들을 나는 몇 번이고 질투했다. 정정하자면 그 친구들의 그림을 싫어했다. 내가 장려상을 받을 때, 방송실로 불려가 최우수상을 받는 것을 중계로 보고자 하면 정말이지 내가 가진 이 ‘장려’상이라는 게 분할 정도였다. 방송실에 다녀온 친구를 향한 칭찬 일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밖에 드는 일은 유쾌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미술 시간이 되면 긴장하곤 했다. 내가 여기서 가장 잘해야만 해. 그런 생각에 휩싸여 있으니 2시간 남짓한 수업 시간 내내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구상만 하다가 끝났다. 담임선생님께 내일까지 집에서 그려 올 테니 시간을 주실 수 없냐는 부탁하는 게 익숙했다. 그게 거절당하면 퇴근하실 때까지 남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질리기도 했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담임선생님이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