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 나는 여기서 돈다
아날로그 탁상시계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원이다.
여기서 돈다.
유리 안에서 바늘 세 개가 서로를 쫓으며
하루를 천천히 밀어 올린다.
그녀는 또 떠난다.
이번에는 조금 길다.
어젯밤, 그녀는 내 배터리를 갈아 끼웠다.
손끝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부탁이라도 하듯,
“잘 있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었다.
그녀는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한다.
사스카툰에서 밴쿠버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한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맨체스터로, 다시 밴쿠버로,
그리고 여기로 돌아온다고.
나는 반응하지 않는다.
나는 늘 같은 자리를 돈다.
그러나 안다.
지구가 도는 동안
나는 이 방의 계절을 넘긴다.
아침 햇빛이 조금 더 깊어지고,
저녁은 조금 늦게 찾아온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조금 더 늙고,
누군가는 기다린다.
그녀는 떠나지만
사실 그녀도 돈다.
엄마에서 딸로,
딸에서 엄마로,
그리고 다시 누군가의 곁으로.
나는 초침을 한 칸 올린다.
똑,
똑,
똑.
그 소리는 작지만
세상은 그 박자 위에서 움직인다.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여기서
하루를 몇 번이고 완성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문이 열리고
낯익은 발소리가 다시 이 방을 채우면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같은 시간을 가리킬 것이다.
지구는 한 바퀴,
나는 수천 바퀴.
우리는 서로 다른 원을 돌지만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똑.
나는 또 한 칸을 보낸다.
아직 몸은 여기 있는데,
시간은 먼저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