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아직 열려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문장은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닫는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 문장을 근본부터 거부했다.
그의 선언은 유명하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나는 정해진 사람이 아니라,
선택과 상황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존재다.
빛처럼, 나는 아직 열려 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말속에는 은근한 안도감이 담겨 있다.
이미 정해진 나를 받아들이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를 한 발 들여다본 뒤에는
이 문장이 조금 낯설어진다.
빛이 보기 전까지 하나의 모습으로 정해져 있지 않듯,
사람 역시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같은 사람인데도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떤 자리에서는 과묵해지고,
어떤 관계에서는 말이 많아진다.
어떤 순간에는 용감해지고,
어떤 순간에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일까.
조용한 나일까,
활달한 나일까,
단단한 나일까,
흔들리는 나일까.
어쩌면 그 모두가
‘진짜 나’ 일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하나로 고정되지 않았을 뿐.
양자역학에서
관측되기 전의 상태는
불완전하거나 미완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는 상태다.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 관점을 사람에게 적용해 보면
꽤 다른 그림이 나온다.
나는 이미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 존재다.
즉, 나는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의 집합이다.
이때부터
‘나답다’라는 말의 의미도 바뀐다.
나답다는 것은
항상 같은 모습이라는 뜻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허용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변하는 자신을 불안해한다.
일관성이 없다고 느끼고,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자적 관점에서는
변함없는 고정성보다
열려 있음이 더 자연스러운 상태다.
물론 이것은
아무렇게나 변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는 원래 이렇다’는 문장으로
스스로를 너무 빨리 확정하지 말자는 제안이다.
확정은 때로
가능성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만약 내가 가능성의 존재라면,
그 가능성은 무엇에 의해
하나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걸까.
빛이 관측을 통해 모습을 얻듯,
사람은 무엇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얻게 되는 걸까.
그 답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라,
관계 쪽에 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가능성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관계가 어떻게
‘나’를 만들어내는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머무는 생각 - 장 폴 사르트르
“인간은 이미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선택 속에서 형성된다.”
머무는 시 - 나태주
“지금의 내가 / 전부라고 말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