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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Dec 20. 2024

할머니의 초대장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크리스마스 무도회가 열렸다. 


'무도회'라는 단어를 동화책에서나 보다가 실제로 보게 되다니! 공 튀기는 소리가 매일 나던 체육관이 조명과 초로 한껏 꾸며져 무도회장으로 탈바꿈하였다. 감탄하는 것은 둘째치고 누가 준비했는지 고생 많이 했겠다 하는 생각에 송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테이블보가 정갈하게 깔린 자리에 앉아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정장을 차려입고 나타난 남학생들이 꽤나 달라 보였다. 이 친구들이 평소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뛰어다니던 애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이힐에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은 많이 놀라웠다. 사실 여학생들이 몸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는 것에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보수적인 한국에서 나는 그나마 인식이 많이 바뀐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지냈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젖꼭지가 드러날 것 같은 의상에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기가 죽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장면을 TV에서나 봤다고 말해놓고, 혼자 동동 떠있는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평소에도 자주 그런 기분이긴 했지만. 집에서 드레스를 가져오지 않았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는 오늘따라 내가 이곳에 어지간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인 중에 집에 드레스 소장하고 있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하하.  






그나마 마음이 좀 안정된 것은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돌 때였다. 강강술래처럼 트리를 가운데 두고 함께 손잡고 노래하며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노르웨이 전통문화라고 했다. 따라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였지만, 노래를 마치면 즐겁게 박수를 쳤다. 학생, 선생님, 직원들, 그들의 가족들, 어린이, 노인, 모두 연결되어 있는 그 느낌이 좋았다.  


키 작은 할머니가 내 왼손을 잡고 느릿느릿 따라왔다. 어둠 속에서도 할머니의 머리가 새하얗게 보였다. 빨간색 스웨터는 크리스마스라 행사라서 입고 온 걸까. 내심 귀엽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속도를 맞추느라 나는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상태로, 노래와 상관없이 엇박자로 움직였다. 나는 할머니의 움직임을 따르고, 할머니는 노래의 음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나에게 건넸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가르쳐주는 듯이. 노래가 끝날 때마다 '와~' 하며 박수를 치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할머니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졌다. 


노래가 새로 시작되기 전  잠깐의 틈새에, 할머니가 나를 올려다보며 뭐라고 말씀을 하셨다. 나보다 한참 작은 할머니의 말을 듣기 위해 허리를 한껏 숙여 귀를 기울여야 했다. 


"어디에서 왔어?"

노르웨이어 왕초보인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더듬더듬 한 단어씩 노르웨이어 시전. 


그러자 갑자기 할머니가 'south korea!' 하고 한 번 더 확인하듯 외치더니, '그 먼 데서 이 학교를 선택해서 온 것이냐!' 하고 크게 놀라셨다. 그리고는 노르웨이에 아는 사람이 있냐, 노르웨이에 사는 친구가 있냐, 그전에도 노르웨이에 왔었냐, 여기에 한국 학생이 몇 명이냐 하며 질문 폭탄이 연달아 떨어졌다. 


신기한 아시안을 보고 놀란 노르웨이 할머니의 스몰 토킹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유교걸로 자란 나는 흰머리 성성한 어르신 말씀에 공손한 태도로 하나하나 답을 했다. 노르웨이는 처음 온 것이고, 노르웨이에 아는 사람 없고, 한국 학생은 여기서 한 명이라고. 할머니가 처음보다 더 크게 놀라셨다. 나를 한 손으로 잡고 있던 할머니가 두 손으로 고쳐 잡고 '어머나 세상에'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할머니는 내가 답을 할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그 말을 한 번씩 반복했다. 할머니의 표정과 목소리를 글로 옮기려면 글자 크기를 키우고 문장 끝에 느낌표를 여러 개 달아야 할 것이다. 


문득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게 이룬 성과를 말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재능을 말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제가 여기에 있어요'와 같은 말을 하는데, 그걸 듣는 할머니는 그 한마디 한마디에 점을 콕콕 찍듯이 강조를 해주었다.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둠 속이었는데도 할머니의 눈빛이 전구처럼 나를 비추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핀 조명이라도 된 듯 나에게 고정된 그 눈빛에 왠지 뭉클하였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교사 연수에서 옆자리 선생님과 짝을 지어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정말 굉장하구나’ 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이 미션이었다. 눈을 마주치는 것도 잘 못했던 나는 마지못해 짝꿍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앉아 있는 짝꿍 선생님과 달리 나에게는 민망한 시간이었다. 눈을 피하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어색함이 길게 흘렀다. 하지만 나를 보는 눈에 마음이 흔들려서 점점 눈두덩이가 뜨거워졌다. 결국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존경과 감탄이 가득 담긴 눈이었다. 


존재의 의미는 무엇에서 오는 걸까. 아무것도 아니었다가 누군가의 발견으로 이렇게 찰나의 차이를 두고 의미를 가지게 되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 발견을 해내는 사람은 귀하다. 사는 동안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과연 나는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인가. 






"You must come to my home."


'must'의 강렬함에 순간 내가 뭘 들은 거지 했다. 날짜까지 체크하며 크리스마스 방학 이후에 할머니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대박. 진짜인가...?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는 남편 이야기며, 중국에 여행 갔던 이야기들을 하셔서 어찌어찌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지나고 내가 널 부를게' 하고는 할머니는 홀연히 사라졌다. 화려한 무도회 한 구석 시들한 아시안 앞에 뜬금없이 요정이 나타나 다른 초대장을 날리고 사라진 것이다. 형체 없는 초대장에 누구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무도회장을 배회하였다.(과연 할머니가 기억을 할까?)


우리는 실상 별 것 아닌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누군가가 보낸 빛으로 별이 되곤 한다.

그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덧)

시끌시끌한 무도회장을 일찌감치 벗어나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서 빨래를 돌리다가, 문득 계모와 언니들이 무도회로 가버린 뒤 신데렐라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 평화로움. 이 조용함. 굳이 무도회를 가야만 하나요. 오래간만에 혼자 있게 되어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까. 언니들이 독차지하던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차도 한잔 하고, 음악도 크게 듣고. 계모와 언니들이 제발 늦게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ㅋㅋㅋ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는 도전으로 노르웨이 폴케호이스콜레에 학생으로 왔습니다.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 쓰듯이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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