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슬럼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2024. 11. 13.
흙냄새에 잠이 깼다. 창밖에 비가 오고 있다. 어릴 때는 이 냄새가 비냄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빗방울이 바닥을 치면 공기에 흙먼지가 섞여서 나는 흙냄새라는 것을 안다.
길을 걷든, 차를 타든, 케냐에서는 늘 흙먼지와 함께다.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길에서는 누구든 흙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낡은 자전거가 지나갈 때, 염소들이 떼 지어 몰려갈 때, 덜컹대며 트럭이 달릴 때, 구름처럼 흙이 날린다. 내가 걸으면서 만든 흙먼지도 만만치 않을 테니 누군가에게 가서 닿을 것이다. 코를 풀면 휴지에 검은색 덩어리들이 묻어 나왔다. 입과 코가 미처 걸러내지 못한 흙은 폐에 고스란히 쌓일 것이다. 시장에는 팔기 위해 늘어놓은 물건들이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새것이지만, 새것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 물건들을 내놓고 판다. 먹기 위해 무언가를 끓이고 있는 솥에도 아마 흙이 섞여 있을 것이다.
케냐에 온 지 열흘 정도 되었고, 그만큼의 기간이 더 남았다. 안 그래도 길고 짧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학교인데, 집중 여행의 의미로 메인클래스마다 해외 학습을 떠나는 기간이 있다. 마리아 샘은 해마다 학생들을 케냐로 데리고 왔다. 아주 오래전 마리아 샘이 케냐의 슬럼가를 투어 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가이드 마틴을 만났다. 마틴은 학교에 초대되어 1년간 학생으로도 지냈다. 그 뒤로 케냐 여행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지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케냐에 도착해 첫날부터 슬럼가를 방문했다. 낡고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이 늘어선 판자촌에서 학생들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 축사와 같은 집들을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내 그것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곤 했다. 몸을 돌리는 것도 어려운 손바닥 만한 집에 들어가 보게 되었는데, 바닥도 벽도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집 아주머니 옆에 학생들이 돌아가며 앉아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마리아 샘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런 장면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기쁘다는 듯이 웃으며 학생들을 살폈다. 나는 비뚤어진 마음이 되어 버렸다. 백인들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아프리카 빈촌을 순회하고 있으니 마음 한편에 돌덩이가 앉혔다. 뜨거운 햇빛과 흙먼지에 찌푸린 표정 탓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겉으로 다 드러나고 있었던 것일까. 선생님들이 자주 나에게 '괜찮아?'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속마음을 감추었다. 백인들의 빈곤쇼핑 현장에 어색하게 끼어있는 아시안이 되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는 시간이 잦았다.
마틴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자신들의 빈곤을 내보여주는 것이 괜찮으냐고. 부유한 백인들이 와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구경하고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마틴의 대답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빈곤은 케냐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에 잠깐 머물고 케냐를 방문했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나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마틴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 무언가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들이 그 장면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가 절대 같을 수가 없다고. 그 말에는 조금 동의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가난한 동네에 외국인이 왔다가 돈을 몇 푼이라도 내면 그 돈으로 학교를 짓기도 하고 실제로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며, 애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헸다. 맞는 말이다. '이런다고 변해?'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변한다고 답했던 나였다. 아는 것만큼 행동하게 되는 것이고, 그게 변화를 만드는 거라고 답을 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답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똑같은 질문을 내가 하고 있다.
오래전 인도 불가촉천민의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다. 내 나이대의 한 여인이 바닥에 주저앉아 소똥을 맨손으로 빚고 있었다. 그걸 햇볕에 말리면 불을 피우는 연료가 된다. 가축이 지내는 곳과 사람 지내는 곳이 구분되지 않는 집이었다. 바라보는 내 시선은 흔들렸지만, 여인은 늘 있는 일인 듯 태연하기만 했다. 어떤 삶은 소똥을 온몸에 묻혀가며 그걸로 입에 풀칠을 하고, 어떤 삶은 여행을 다니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내 노력과 상관없이 다른 몫을 쥐고 태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가? 이 불공평함이 나에게 적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길을 걸으면 여기저기서 헬로! 잠보! 카리부! 가 들린다. 케냐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커다란 입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한다. 루쓰와 루쓰(같은 이름 두 명)는 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어댔다. 입을 한껏 벌리고 두 눈을 감은 채로 엄청 크게 웃는데, 그걸 보면 말을 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동안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눈치를 보고 있었던 내가 여기서는 단어 하나로 최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큰 웃음소리로 서로가 서로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슬럼가의 교회는 가난하고 누추했다. 그날 저녁 돌아보기 시간에 학생들은 설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흥분해 있어서 이상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해서 기억에 남지도 않았다. 다만, 끝도 없이 이어지던, 케냐의 영혼이 가득한 신명 나는 찬양은 가슴에 남았다. 사람들은 케냐 특유의 리듬이 시작되자 몸을 주체하지 못 하는 사람들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추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손뼉 치고, 함께 했다. 그게 그들이 흙먼지 속에서 삶을 건져 올리는 방식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마틴은 그 사회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칠드런 하우스의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낡은 침대 하나를 두세 명이 공유하면서 한 방에 서른 명 가까이 함께 지내고 있다. 함께 살며 옷가지를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하는 것 같은 것을 배우며 지낸다고 했다. 아이들은 가축 사료 비슷한 느낌의 풀떼기를 식사로 받고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둘러앉은 아이들은 공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가난과 다른 이의 가난을 해결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질문을 가지고 있으니 이미 답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연습한 케냐 춤을 선보이겠다며 아이들이 나섰다. 연습 중인 아이들 틈에 끼어있다가, 아이들이 서로 순서를 가르쳐주고 동작을 체크하는 걸 보게 되었다. 서로를 응원하는 애정 어린 눈빛에서 사이가 돈독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는 구경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보태졌다. 천장을 뚫을 듯이 높은 톤의 함성에 춤추는 아이들도 한껏 달아올랐다. 그 함성이 없었다면 춤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관계 안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다 낡아 무너져 내릴 듯한 집을 보았을 때 함부로 불행을 정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들의 행복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또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싶기도 하다.
삶은 어떠해야 하는 걸까.
흙바닥 밟을 일 없는 곳에서도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는 도전으로 노르웨이 폴케호이스콜레에 학생으로 왔습니다.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 쓰듯이 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