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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생은 내 친구

친구가 학교를 그만두면 생기는 일

by 정인

학기 초 어느 날인가,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둘렀다.


"괜찮아?(Are you ok?)"


셀마였다. 학생들 사이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알아본 것이다. 공지 사항을 잘못 이해하고 다른 곳에 가 있다 뒤늦게 부랴부랴 찾아와서는 남 탓과 내 탓을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적잖이 실망하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뭐든 한 번에 못 알아듣고 두 번 세 번 물으며 지내던 어리바리한 시기였다. 괜찮냐고 묻는데, 질문인지 인사인지 모를 그 의문문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 뭐 괜찮아'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것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했다. 셀마는 내 대답을 듣고도 한동안 말없이 그대로 머물러 주었다. 어깨 위에 놓인 작은 손바닥으로 위로를 받았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우박이 떨어지며 노르웨이의 북극날씨 예고편이 시작되자, 셀마는 나에게 다운점퍼를 주었다. 자기는 다른 점퍼가 더 있으니 한국에서 보낸 소포가 도착하기 전까지 편하게 입으라고 했다. 만약 한국에서 보낸 옷이 충분히 따뜻하지 않으면 학교 마칠 때까지 입어도 된다며 쿨하게 말했다. 셀마의 체구에 맞는 옷이니만큼 나에게는 턱없이 작았다. 하지만 '기다려봐!' 하고는 자기 방으로 뛰어가던 뒷모습을 생각하면 그저 '땡큐' 할 수밖에 없었다.


케냐 여행에서는 셀마와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잔 날들이 있었다. 새벽녘에 어찌나 춥던지 몸을 웅크리다 못해 쪼그라들 지경이었는데, 셀마가 내 어깨 위로 이불을 끌어당겨 주는 느낌에 잠이 깼다. 잠시 잠이 드는가 싶다가 문득 다시 깼을 때는 눈앞에 추위에 떠는 셀마가 보였다. 나는 얼른 셀마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의좋은 형제처럼 밤새 서로를 챙기느라 잠을 설쳤다. 다행히 나중에는 이불을 각자 하나씩 얻었다. 지난밤 너무 추웠다는 이야기를 하며 함께 호들갑 떨던 것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어느 날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셀마가 자신의 쌍둥이 남동생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델처럼 아름다운 모습에 내가 큰 소리를 내며 감탄하자, 셀마는 '얘가 잘생긴 거야? 너무 자기애 넘쳐 보이고 재수 없지 않아?'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놓고는 다른 멋진 사진들을 더 찾아내 보여주었다. 내가 셀마의 휴대폰 갤러리에 남동생 사진이 수두룩 있는 것을 가리키며 남매 관계는 전 세계가 비슷한 것 같다며 웃었더니, 셀마가 같이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내 동생과 친구 같은 사이라고 했고, 조카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셀마는 동생이 아이를 낳으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했다.


반에서 다 같이 수영장에 갔을 때는 풀 한쪽 구석에서 셀마와 둘이 놀았다. 다른 아이들이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아무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다이빙에 열을 내고 있었는데, 셀마와 나는 물속에 목까지 몸을 담그고 '연애' 이야기를 나누었다. 셀마의 연애는 전교생이 알고 있었다. 케냐 여행에서부터 다른 학생과 매일 전화하는 것 같더니만 이전의 남자친구와는 헤어진 모양이었다. 셀마는 자신과 남자친구 둘 다 첫 연애였고, 두 사람의 미성숙이 관계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성숙한 대화는 뭐지 하고 생각했다. 지금 썸을 타는 친구가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며 나에게 혼자 지내는 건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나에게 뭔가 물은 뒤에는 부르륵 거품 소리를 내며 코를 물속에 담갔다. 수영복 차림을 하고 여자애와 둘이서 비밀스럽게 연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정말 십 대 소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똘똘함과 선함으로 눈이 빛나는 친구였다. 작고 마른 체구에 컬이 들어간 금색 단발머리. 가끔 장난인지 뭔지 손가락을 우아하게 움직이며 미소 짓곤 했는데, 친구들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세상 아름다웠다. 대부분의, 아니, 모든 학생들이 셀마를 좋아했다. 남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셀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남학생들은 하나같이 한껏 들떠있거나, 눈에 수줍은 미소를 담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셀마 주변에는 늘 막역하게 소통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 어울리며 함께 뒹굴고 깔깔댈 때는 그 또래 애들의 천진난만함이 보였다.


그러나 2년 차 스텝 학생 중 한 명이었던 셀마는 조용한 친절함과 은근한 상냥함이 몸에 배어있었다. 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통성명을 한 사이라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나의 민원창구는 셀마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셀마는 그게 무엇이든 차근차근 알려주고 직접 몸을 움직여 도와주곤 했다. 사람들 돕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갖는 게 꿈이라고 했다. 고마운 친구였다. 하지만 그 작고 (나보다 한참) 어린 금발 백인 소녀와 찐친, 베프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셀마가 친절을 베풀어주는 학교 구성원 중 한 명 정도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 떠나기 전에 널 못 만난 게 너무 슬퍼, 근데 스트레스 때문에 학교에 있을 수가 없어. 짐 챙기러 갔다가 바로 나오느라 너한테 작별 인사도 못했어. 널 정말 좋아해. 넌 정말 멋지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야! 서울에 갈 돈을 모으면 꼭 만나러 갈게!"


셀마가 학교를 그만두었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이틀째 된 날이었다. 한낮 미천한 학생 중 한 명이었던 나에게 사랑 고백 같은 메시지를 투척하고 사라졌다.


셀마가 연애 문제로 갈등을 겪다 스트레스가 심해졌는지, 방학 동안 집에 머물다 보니 학교에 오기 싫어졌는지, 할 일이 너무 많아 피곤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학교와 학교 친구들이 자신의 번뇌를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곳 학생들은 시험도 경쟁도 없는 이곳에서 주말이면 우스꽝스러운 옷으로 치장을 하고 현란한 조명 아래서 같이 춤을 추곤 한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못한 무언가를 다들 가슴 어딘가에 안고 지내는 것이다.


평소 눈웃음을 잘 짓던 친구 한 명이 사라지면서 남긴 파장은 작은 듯 큰 듯 대단했다. 같은 2년 차 스텝으로 지내온 베라와 마호가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며 밥을 먹고 있길래 나도 모르게 '괜찮아?'하고 묻게 되었다. 마호는 순간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척하고 있구나. 마호는 스텝 생활의 피곤함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베라가 옆에서 우물우물 음식을 씹고 있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일상에 갑자기 물음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게 맞나? 나는 괜찮은 건가? 하고 묻고 있는 표정이었다.


스티나는 스스로 학교를 검색하고 알아본 뒤에 입학을 결정한 학생이었다. 두 번째 학기에 우리 반에 편입을 했는데, 금세 학생들과 친해졌다. 목소리도 크고 농담도 잘했다. 스티나와 같이 있는 학생들 사진을 찍으면 다들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떤 활동이든 적극적이어서 스티나가 있으면 늘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이미 형성되어 버린 또래관계 안에 파고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아침마다 스티나를 만나면 등을 토닥이며 인사하고 챙겨주었지만 결국 마지막 방학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개학하고 학교를 안 나오는 게 슬프지 않냐는 마호의 질문에 '전혀!'라고 답했다.


요아르는 작곡과 패션에 관심이 있는 '유니크'한 학생이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올 것처럼 훤칠한 키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서 처음 봤을 때 눈을 떼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뭔가 독특한 생각이 많은지, 회의를 할 때면 아이디어를 수두룩 쏟아냈다. 하지만 특유의 거만해 보이는 말투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소통이 쉽지 않았다. 조금씩 유연해지기는 했지만, 이제 막 사춘기를 넘어서는 학생들이 서로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헤아려줄 만한 여유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공동체 활동을 강조하는 학교에서 맡은 일을 하고 규칙을 지키는 일은 요아르에게 감옥같이 느껴졌다. 반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요아르를 힘들어하기는 선생님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그럽지 못한 결과 결국 요아르는 수료를 얼마 남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특이함과 다름을 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 그동안 대안학교에서 일하며 겪은 일들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예전에 동료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모여 있는가를 보고 그 조직에 대해 알 수 있듯이, 어떤 사람이 떠나는가를 보고서도 알 수 있다.

어떤 학생이 떠나는가. 학교가 입학 요강을 만들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자퇴생의 면면일 것이다. 떠나는 사람을 통해 내 자리를 돌아보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학교는 건물이 아니다. 학교는 교과서가 아니다. 학교는 첨단 설비가 아니다. 학교는 합격율이 아니다.

학교에서 나를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면 결국 '사람'이다. 각 잡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담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서로 돕고... 이런저런 것들이 오가는 동안 우리는 상대방을 겪으며 성장한다. 심지어 떠나간 사람에게서도 배운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건 그냥 학교라는 공간이 돌아가는 이치 같은 것이다.




'잘 지내?'


잊을 만하면 셀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이리저리 치이다, 자퇴한 친구의 질문에 오늘 하루 돌아보는 시간을 겨우 갖는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는 도전으로 노르웨이 폴케호이스콜레의 학생으로 지내다 왔습니다.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 쓰듯 남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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